국가정보원은 소속 직원이 한나라당 이명박 경선후보의 부동산 보유 현황을 조사했다는 사실이 드러나자 13일 보도 자료를 내고 “국가 사회 전반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부패 첩보 수집도 직무 범위에 포함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런 논리에 따라 제이유 사건을 포함해 420여 건의 ‘부패 사건 첩보’를 수집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후보의 ‘부동산 차명 보유 의혹에 관한 첩보’도 그중 하나라는 것이다.
이 후보 관련 부동산 자료를 열람한 동기(動機)와 “외부에 유출하지 않고 폐기했다”는 경위 설명도 미심쩍지만, 국정원이 직무 범위를 ‘국가 전반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첩보 수집’으로 멋대로 확대해 비밀리에 작업을 해 왔다는 사실은 충격적이다.
국정원의 직무는 국정원법 3조에 명백히 규정돼 있다. 한마디로 국외 정보와 대공(對共) 및 대(對)테러 첩보 수집이다. 노무현 정권이 자랑하는 ‘반(反)부패 시스템’을 봐도 공직 분야 감찰은 감사원, 정책 수립 및 평가와 부패 신고 접수는 부패방지위원회, 권력형 비리 수사는 검찰, 서민생활과 직결된 관행적 비리 수사는 경찰이 맡도록 돼 있다. 어디에도 국정원이 끼어들 여지는 없다.
1996년 김영삼 정부는 정치공작으로 악명 높던 ‘남산(南山) 안기부(안전기획부)’의 직무 범위를 축소했다. 안기부를 국정원으로 개명(改名)한 김대중 정부는 1999년 국정원 직무를 더 엄격히 제한했다. 모두 입법을 통해서였다. 하지만 양김(兩金) 정부 때도 도청이 자행됐고, 2005년 전직 국정원장 2명이 구속되기에 이르렀다. 그런데도 노무현 정부의 국정원이 ‘전방위 첩보 수집’을 고유 임무라고 내놓고 강변하고 있다.
‘부패 첩보’라고 하지만 누구를 협박하기 위한 개인 정보인지, 정치적으로 악용하기 위한 ‘X파일’인지 국민은 알 수가 없다. 중앙부처 고위 공직자와 지방자치단체장, 지방의회 의원 등을 대상으로 했다는 ‘문제의 420여 건’도 마찬가지다. 내용은 공개되지 않았지만 야당 소속 정치인과 지자체장이 주요 대상일 것이라는 소문도 있다.
‘이명박 파일’뿐 아니라 국정원이 이른바 ‘부패 척결 태스크포스(TF)팀’을 운영하면서 다른 많은 정보를 ‘불법’으로 수집하거나 유포하지 않았는지 밝혀져야 한다. 특별검사제 또는 국정조사권 발동도 검토해 봐야 한다.
국정원은 대통령의 지시·감독을 받도록 돼 있다(국정원법 제2조). 국정원의 불법 행위가 드러나면 국정원장은 물론이고 대통령도 책임을 져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