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지-능력-여건-보상’ 4박자가 필요
논술 교육과 관련해 따져보고 고민해 보아야 할 문제가 아직 꽤 남아 있지만 여러 사정상 다음 기회로 미루고, ‘논술 비타민’의 막을 오늘로 일단 내려야 할 것 같습니다. ‘논술 비타민’을 연재했던 지난 9개월 남짓 동안 현장 논술 교사 연수를 열심히 다녔습니다. 이 과정에서 논술 교육과 관련해 상당한 변화의 조짐이 있음을 쉽게 감지할 수 있었습니다. 2006년이 공교육 논술 교육의 원년이었다면, 2007년은 뿌리를 뻗어가고 있는 해라는 것을 절감했습니다. 물론 아직 가야 할 길이 멀지만, 이제 그 길이 안개에 가려있지 않고 꽤 또렷하게 보인다는 점이 중요합니다.
현장만 변하는 것이 아니라, 정책 당국의 마인드도 전과는 다르기 때문에 이 변화는 별똥별처럼 반짝이다 끝나지 않고 은하수처럼 이어져 나갈 것으로 기대됩니다. 6월, 교육부 주최로 전국 시도 교육청의 논술 담당 장학관과 장학사들이 모인 워크숍에서 논술 교육 정착을 위해 진지하고 열띠게 고민하고 토론하는 정책 담당자들의 예사롭지 않은 모습을 확인했기 때문에 더욱 더 이런 기대를 가져 봅니다.
이제 논술 교육의 발전 방향을 본격적이고 좀 더 구체적으로 모색해야 하는 시기에 와 있는 것 같습니다. 일단 대학입시 때문에 논술이 부각되고 있지만, 입시 차원에서 머무르지 않고 교육 전체가 한 단계 진전하는 계기로 삼아야 할 시점이기 때문입니다.
역시 교사에게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중고등학교 교육에서는 현실적으로 교사의 역할이 결정적이며, 특히 논술 교육의 경우, 현 시점에서 교사가 가장 중요한 변인입니다. 논술 교육을 담당할 주체가 제대로 형성되어 있지 않으면, 아무리 좋은 교재가 나오고 제도가 변화되어도 정상적인 교육이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바람직한 논술 교육은 교사로부터 출발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런데 교사들이 논술교육에 제대로 참여하기 위해서는 의지 능력 여건 보상의 네 가지 조건이 동시에 충족되어야 합니다.
우선 교사가 논술에 대하여 교육하고자 하는 의지를 갖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현재 의지는 거의 합격 수준입니다. 전국 곳곳에서 논술 교육의 의지가 불타오르고 있기 때문입니다. 2006년을 ‘공교육 논술 교육의 원년’이라 부르는 가장 중요한 이유도 작년 한 해를 거치면서 논술에 대한 교사들의 인식이나 태도가 전과는 많이 달라졌다고 판단하기 때문입니다. 단순히 대학 입시 차원에서만이 아니라 각 교과에서 평소에 교수 학습 방법으로 논술을 받아들이고자 하는 의지도 본격화되고 있습니다. 시도 교육 연수원마다 논술 연수가 가장 경쟁률 높은 연수 중의 하나이며, 연수에 참여하는 자세 역시 진지하고 성실하다는 점도 이러한 변화를 잘 드러냅니다.
둘째는 능력입니다. 아무리 의지가 있다 하더라도 능력이 안 되면 논술 교육이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 이와 관련해서는 교사 연수가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어서 긍정적입니다. 그동안은 △개념 이해 △경향 파악 △정보 교환 △사례 발표 중심의 기본 연수가 대부분이었지만, 최근 업그레이드된 논술 연수들이 시도되고 있습니다. 실습 중심의 전문과정이 확산되고 있는 것은 반가운 현상입니다. 그러나 좀 더 양적으로 확산되고 질적으로 향상되어야 합니다. 양적 확산은 교육부나 각 시도 교육청에서 온라인 연수 등을 통해 상당히 신경을 쓰고 있습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연수의 질적 향상을 이루려면 두 방향의 노력이 필요합니다. 먼저 실습 중심의 전문 과정이 더 확산되어야 합니다. 스스로 논증적 글을 써보고 나아가 학생 글을 첨삭해보는 실습 없이는 실제 지도 능력을 갖출 수 없기 때문입니다. 다음으로 다양하게 전문화된 연수가 필요합니다. 우선 교과 영역별로 연수 프로그램이 다르게 구성될 필요가 있습니다. 그리고 논술 지도 경험에 따라서, 또한 개별 학교에서 논술 교육의 어느 영역을 담당할 것인가에 따라서 연수 프로그램이 세분화되면 연수 효과는 더욱 커질 것입니다.
셋째, 아무리 능력이 갖추어져도 개별 학교에서 교육 여건이 마련되지 않으면 능력은 발휘되기 힘듭니다. 잡무에 시달리면서 논술 지도의 책임까지 떠맡아서는 좋은 결과를 기대할 수 없는 것이 당연합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개별 학교에서 논술 지도 시스템을 갖추는 것입니다. 작년 말 많은 학교에 결성된 교사들의 논술 교육 동아리는 이런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가집니다. 여러 교과 교사가 함께 고민하는 과정을 겪어야 현장에 맞는 논술 교육 시스템이 형성될 수 있기 때문에, 논술 교육 동아리는 공교육 논술의 초석이 될 것으로 기대됩니다. 논술 교육이 부각되는 이 시점에서는 당분간 논술 교육 동아리에 속한 교사들에게 논술에 대해 연구하고 고민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 주어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개별 학교의 교장, 교감 선생님들의 관심과 노력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교장, 교감 선생님을 대상으로 한 관리자 논술 연수가 필요한 시점이기도 합니다.
마지막으로 여건이 되더라도 노력에 대한 합리적이고 적절한 보상 시스템이 있어야 합니다. 보상이 없다면 결국 교사의 봉사 활동을 바라는 셈이 되는데, 이렇게 되면 다수의 교사가 장기적으로 참여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합니다. 예를 들어 교사가 학생의 논술 답안을 첨삭하고 평가해주는 것은 현재로서는 과외활동입니다. 이를 순전히 교사의 헌신에만 의존할 수는 없습니다. 제도적 차원에서 적절하고 합리적인 보상 시스템이 마련되지 않으면 논술 교육이 공교육 안에서 정착되기 어려울 것입니다. 교육 정책 당국의 적극적 대처를 기대해 봅니다.
박정하 성균관대 학부대학 교수·의사소통교육연구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