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촬영 : 동아일보 사진부 신원건 기자
노무현 대통령은 17일 정치 발전을 위한 현행 헌법의 개정 필요성을 거듭 제기하면서 내각제 개헌, 대선 결선투표제 도입, 대통령의 특별사면권과 국회의원 면책특권 제한, 선거구제 개혁 등의 전면적인 검토를 촉구했다.
노 대통령은 이날 '우리 헌정제도, 다시 손질해야 합니다'라는 제목의 '제헌절에 즈음해 국민 여러분께 드리는 글'을 발표했다.
노 대통령은 이 글에서 각 정당과 대선후보들에게 개헌 약속의 이행을 당부하고, 이를 위해 올해 대선에서 개헌의 공론화를 해야 한다면서 헌법 개정 논의사항을 구체적으로 제시했다.
노 대통령은 "차기 국회에서 개헌을 한다면 올해처럼 촉박한 시간 때문에 제한된 논의를 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기왕에 약속한 단임제와 임기 일치 문제 이외에도 헌정 제도를 손질할 부분은 없는지 다양한 대안을 연구하고 논의해야 한다"면서 개헌 문제의 전면적 검토를 촉구했다.
결선투표제와 관련해 노 대통령은 "결선투표제는 국민 과반의 지지를 얻는 대통령을 선출하여 국민적 대표성을 높일 수 있는 선진적인 제도"라며 "프리덤하우스가 선정한 인구 200만 명 이상의 대통령제 자유민주국가 26개 나라 중에서 결선투표제를 시행하지 않는 나라는 한국 등 5개국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노 대통령은 내각제 검토 필요성을 제기하며 "내각제는 정당 책임정치를 구현하고, 여소야대의 정치구조를 근본적으로 해결하는 방안이고, 국민의 의사에 따라 정치질서가 유연하게 반응하고, 정부와 의회의 갈등을 최소화해 정치적 통합성을 확보하기가 용이하며, 또한 레임덕이 없으니 대통령제에서 주기적으로 겪는 국정의 공백도 최소화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노 대통령은 이어 "우리 정치현실에서 내각제는 제도 자체의 장단점을 떠나 논의 자체가 쉽지 않은 사안"이라며 "그러나 개헌논의가 폭넓게 진행된다면 내각제도 다양한 대안 중의 하나로 검토해볼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노 대통령은 지역주의 정치구도 극복 등을 위한 핵심으로 선거구제 개혁을 주창하면서 "현재의 선거구제 하에서는 대표성의 왜곡이 헌법 정신을 훼손하는 심각한 수준"이라며 "지난 총선에서 한나라당은 영남에서 52.3%를 득표했지만 의석수에서는 66석 중 90%가 넘는 60석을 차지했고, 반면 32%를 얻은 열린우리당은 6%인 단 4석을 얻는데 그쳤다"고 지적했다.
노 대통령은 특히 "국회의원 면책특권과 대통령의 사면권에 대해서도 과연 선진 민주정치에 부합하는 제도인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며 "대통령의 특별사면권과 국회의원의 면책특권을 제한하는 것은 '특권 해소'라는 시대적 가치와 정신에도 부합될 것이며, 또한 정치권 스스로가 기득권을 제한하는 결단을 내리는 것이기에, 국민적 합의를 모아내기도 어렵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국회의원 면책특권에 대해 노 대통령은 "애초 면책특권은 제왕적 권력에 맞서 국회의원의 정치활동 자유를 제도적으로 보장하기 위한 것이었지만 제왕적 대통령이 사라지고, 의회의 권한이 강화되면서 면책특권은 본래의 취지를 잃어가고 있고, 오히려 무책임한 정치공세의 수단으로 악용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노 대통령은 "따라서 면책특권을 축소 또는 엄격하게 제한할 필요가 있으며, 이를 위해서 면책특권을 국회의원 임기 중 형사상의 소추를 받지 않는 것으로 축소하거나, 허위사실에 의한 명예훼손의 경우에는 이를 적용하지 않도록 조항을 바꾸는 방안을 검토할 수 있다"고 제안했다.
노 대통령은 또 대통령 특별사면권에 대해 "우리 헌법이 대통령에게 사면권을 폭넓게 인정한 것은 이를 국민통합을 위한 통치 수단으로 활용하도록 하기 위해서이지만, 대통령의 사면이 계속 정치적 시비와 갈등의 소지가 된다면 사회적 합의를 거쳐 사면법 등 관련 법령을 개정하거나 차제에 헌법을 개정하는 것도 한 방안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노 대통령은 이밖에 현행 선거법, 정당법, 정치자금법 등 헌법적 정치제도들이 "국민의 정치활동의 자유와 참여를 지나치게 제한하고 있다"며 관련 법률의 개혁을 촉구했다.
노 대통령은 구체적으로 △선거운동기간 규정(대선 23일, 그외 선거 14일)의 개정 △대통령의 선거중립조항 손질 △정당후원회 부활, 당원 모집 등 정당집회 제한 등의 정당 활동 제약 규정의 개선 △국민투표법 개정 등을 제기했다.
노 대통령은 "선진국의 예를 보더라도 선거운동기간을 따로 정하고 있는 나라는 거의 없고, 실제로 선거운동 기간의 제한은 유명무실해지고 있다"며 "선거운동의 자유는 더욱 보장되어야 하고, 금지는 제한적이고 구체적이어야 하며, 일일이 규제하려 들면 오히려 실효성이 없어진다. 최근 문제가 되고 있는 인터넷 선거운동도 자유롭게 이루어질 수 있도록 최대한 보장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노 대통령은 대통령의 선거중립 조항 손질 필요성을 제기하며 "특히 선거 때 벌어지는 국정운영에 관한 논쟁에서 대통령이 책임있게 임하는 것은 자유롭고 공정한 경쟁을 위해 꼭 필요한 요소"라며 "국민들에게 가장 유익한 것은 정치적, 정책적 쟁점에 대해 의견을 달리하는 정치세력이 자유롭고 공정하게 경쟁하는 것이고, 지난 5년 동안의 국정운영을 놓고 논쟁한다면 이에 대해 당연히 대통령이 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노 대통령은 "헌법 테두리 내에서 정당의 자유로운 활동을 최대한 보장해야 한다"고 강조한 뒤 "대통령 후보자가 정치활동을 하는 데 제약을 받거나, 직접적으로 불법에 노출될 가능성이 있어서는 안되며, 지금처럼 당내 경선 시기에만 후원회를 허용하는 것은 불법선거를 제도적으로 조장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라며 "국회는 이른 시일 내에 대통령 후보자의 후원회를 허용하는 법률안을 통과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노 대통령은 또 "공천헌금 비리는 '정당의 조직과 활동이 민주적이어야 한다'는 헌법 8조에 정면으로 위반되는 것으로 민주질서를 훼손하는 중대한 위협"이라며 "이러한 공천 비리를 제대로 근절할 수 있도록 하루 빨리 공직선거법, 정치자금법을 개정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디지털뉴스팀·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