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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호택 칼럼]대선판에 부는 공작風

입력 | 2007-07-17 19:28:00


국가정보원은 중앙정보부 시절부터 중요인물(VIP)에 대해 존안(存案)카드를 만들어 관리하고 있다. 공식 비공식적인 경력, 일선 정보요원(IO)들이 수집한 첩보, 정치 성향, 재산, 비리, 도청 감청자료 등 해당 인물에 대한 자료가 집중된 파일이다. 전 국정원장 A 씨는 취임 직후 자신에 관한 내용이 궁금해 존안카드를 보자고 했다. 얼마 후 담당 부서에서 한 페이지짜리 요약본이 올라왔다. 원장에게도 존안카드의 원본을 보여 주지 않는 것이 국정원의 불문율이라고 한다.

부패척결 TF, 정치사찰의 부활

한나라당 이명박 대선 예비후보의 존안카드도 현대건설 사장 시절부터 작성됐을 것이라고 국정원 사람들은 말한다. 안전기획부(현 국정원) 경제팀은 주요 기업에 무시로 출입하며 정보를 수집했다. 현대건설은 대형 국책공사를 많이 맡았던 국내 최대의 건설업체였던 만큼 존안카드의 분량도 꽤 많을 것이라는 추리가 가능하다.

이 예비후보의 존안카드를 업데이트하는 수준이었다면 국정원이 계속하는 일로 대수로울 게 없다고 국정원 전직 간부 B 씨는 말했다. 그러나 안보 위해(危害) 분자도 아닌 각계의 중요 인물에 대한 파일을 만들고 수시로 업데이트하는 것은 ‘남산 안기부’가 하던 정치 사찰의 잔재이다.

김만복 국정원장은 부패척결 태스크포스(TF)를 만들어 수집한 부패 정보를 대통령민정수석비서관실에 보고했다고 한나라당 의원들에게 밝혔다. 부패척결 TF가 하는 일은 정치권을 비롯해 사회지도층의 비리 동향을 파악하고 감시하는 업무에 해당한다. 김 원장은 “이 예비후보의 처남 김재정 씨에 대해 스크린한 것은 TF 소속 K 씨가 개인 차원에서 한 것”이라고 답변했지만 석연치 않다. 그럴듯한 명분 속에서 야당 인사나 차기 대선주자 그리고 관련자의 비리 정보를 수집할 수 있는 근거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김영삼 김대중 정부에서 집중적으로 진행된 국정원의 개혁 방향은 정치공작과 사찰을 중단하는 것이었다. 이에 따라 국정원법을 개정해 업무를 국외 정보와 대공(對共) 및 대(對)테러 첩보 수집으로 한정했다. 천호선 대통령대변인은 국정원이 수집한 비리 정보로 유전 게이트, 항운노조 비리, 제이유 로비 의혹이 노출됐다고 말했다. 국정원의 비리 정보 수집을 실적처럼 내세울 일이 아니다. 검찰 경찰 부패방지위원회 감사원이 할 업무에 국정원을 써먹은 것은 그동안 민주정부에서 이루어진 개혁을 후퇴시킨 행위다.

김승규 전 국정원장은 국가 범죄를 단절하겠다며 김대중 정부 시절의 도청을 수사했다. 바로 그 국정원장 밑에서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은 이해할 수 없다. 이상업 전 국내담당 2차장의 활동에 관해서도 여러 갈래의 의혹이 나온다. 노무현 대통령은 2005년 7월 김 전 원장에게 임명장을 주면서 “국정원이 토착 비리 정보는 좀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대통령이 지시한 토착 비리 정보 수집을 하기 위해 이런 TF가 만들어졌던 것이라면 첫 단추부터 잘못 끼웠다.

‘次期’ 유력자에 보험 들고 줄서기

국정원 간부들은 정권과 가깝거나 권력 실세(實勢)에 줄이 닿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사통팔달의 채널을 가진 정보의 집결지에서 여권의 승리에 기여하기 위해 야당 대선주자를 해코지하는 정보를 찾고 싶은 유혹에 빠져들기 쉽다. 국정원 직원들도 정권이 바뀔 때마다 수많은 사람이 직장에서 쫓겨나거나 사법처리되고, 새 정권과 줄을 댄 사람들이 승승장구하는 것을 지켜보았다. 그래서 대선 때만 되면 유력 주자에게 보험을 들려는 직원들의 정보 유출이 줄을 잇는다고 전직 국정원장은 전했다.

국정원 간부들은 할 일이 무엇이고 안 할 일이 무엇인지를 분명히 알고 있을 것이다. 해서는 안 될 일을 하고 싶은 유혹에 끌릴 때마다 나락에 떨어졌던 역대 정보기관 수장들의 면면을 떠올려 보면 유익할 것이다.

황호택 수석논설위원 hthw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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