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년 만에 9집으로 돌아온 가수 조덕배 씨. 10년 전 앨범 녹음을 하러 프랑스 파리에 갔을 때 산 기타를 들고 청계천에서 노래를 불렀다. 그는 이날 처음으로 청계천에 와 본다고 했다. 원대연 기자 yeon72@donga.com
"세월이 변했는데 나도 변해야죠. 그리고 내 음악도…."
젊은 사람들에겐 그의 이름 석자보다 '그대 내 맘에 들어오면은', '꿈에'라는 리메이크 곡으로 더 와 닿는다. 7080 세대들은 노래와 더불어, 우울했던 '과거'로도 그를 기억한다. 가수 조덕배(49). 9년 만에 9집을 들고 온 그는 많이 달라져 있었다.
우선 한번도 남에게 곡을 손 벌리지 않았던 그가 처음으로 곡을 받았다. 매번 혼자 하던 작업은 젊은 프로듀서에게 전적으로 맡겼고 보통 두 달이면 끝나던 작업이 4년으로 길어졌다.
"5년 전 호주로 이민을 계획했어요. 떠나려는데 벌어놓은 돈은 없고 이대로 가면 도망이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래, 가더라도 뭔가 남기자. 그렇게 '환각상태'에서 벗어났는데 세상은 달라져있더군요. 나서겠다는 음반사도 없고. 아차, 싶었죠."
변한 건 그뿐이 아니다. 노래에 취해 흐느끼고 내지르던 창법은 한층 절제됐다. 스스로도 "예전 내 목소리는 짜증나더라"고 말한다. "내 음반 한번 들어보라고 남에게 권하기는 생전 처음이네요"
무엇보다 이번 앨범의 큰 특징은 젊은 가수들을 앨범 작업에 참여시킨 것.
'없습니다', '녹지 않는 쪼꼬렛' '하늘에서 나무까지' 등 신곡 3곡을 제외하면 나머지는 기존 그의 노래를 재구성했다. '나의 옛날이야기'는 전제덕의 하모니카와 어우러져 레게음악이 됐고 조성모가 리메이크 했던 '그대 내 맘에 들어오면은'에는 삼바의 리듬을 얹었다. 조 PD, 트로트 가수 LPG, 댄스그룹 거북이, 쿤타&뉴올리온스 등도 이번 음반에 참여했다.
"우리나라도 이제 음악 장르가 두터워졌어요. 각 장르마다 마니아층도 생기고…. 그 모두를 만족시키는 '선물'이라고 생각하며 만들었어요. 30, 40대들에게는 그때를 추억하고 10, 20대에는 '신인가수 조덕배'로 그들의 감성에 맞는 음악을 하고 싶어요."
젊은 가수들과 작업해 본 소감을 묻자 "작업 전에는 물질만 좇고 음악을 도구로 여기는 줄 알았는데 의외로 '딴따라 기질'을 갖고 있더라"며 "음악에 전부를 거는 젊은 친구들"이라고 평했다.
딸 우주(12) 양의 웃음소리가 인상적인 '천사의 미소'는 가수가 장래희망인 딸을 위한 일종의 유산이다. 딸이 훗날 가수가 되면 '딴따라'가 아닌 '예술가'로 대접받는 시대가 되길 바라며 함께했다고 한다.
얼마 전 CF삽입곡의 '나의 옛날이야기' 표절논란에 대해 묻자 "나도 문근영 팬"이라며 웃었지만 "좋은 음악으로 떠야지 아무 것도 모르는 사람들의 안주거리가 돼서 씁쓸했다"고 말했다.
"매일 밤 라이브 카페에서 노래를 불렀어요. 10년 동안 미사리를 오가며 차 안에서 달구경을 했죠. 그 시간들을 견디고 다시 새롭게 출발할 수 있다니 꿈같아요."
하루도 같은 모습을 보여주지 않은 달을 보며 들었던 생각은 '새벽 한강에 뜬 달빛은 당신으로 가는 길'(없습니다)이라는 가사로 옮겨졌다. '그래 세월은 가겠지/나도 따라서 가겠지/여기 사랑을 남기고 여기 추억을 남기고…'로 시작하는 '없습니다'는 자신과 같은 중년 남성이 가장 공감할 대목이란다. 인터뷰 내내 "내가 너무 건방졌다"는 말을 반복하던 그에게 앞으로 계획에 대해 물었다.
"내일 모레면 제 나이 50이에요. 이제 10년 남았네요. 더 바라지도 않고 딱 60살까지 노래할래요. 더도 말고 10집까지만…. 그 다음은요? 그걸 제가 어떻게 알겠어요."
염희진기자 salthj@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