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거사 크리스티도 두 손 든 절묘한 트릭
존 딕슨 카의 추리소설의 재미는 난마(亂痲)처럼 얽힌 수수께끼를 풀어 나가는 맛일 것이다. 도저히 일어날 수 없을 것 같은, 불가사의한 살인 사건이 벌어진 뒤 긴박하고 현란한 서스펜스로 전개되다가 의외의 충격과 함께 명쾌한 결말에 다다른다. 미국 작가인 카는 열다섯 살 때 처음으로 단편 추리소설 ‘라메세스의 루비’를 발표했으며 ‘화형법정’ ‘세 개의 관’ 등 수많은 걸작을 선보였다. 그의 서가에는 스스로 “나의 범죄서적 수집은 세계 최고이리라”고 자랑할 만큼 동서고금의 많은 범죄서적이 꽂혀 있었다. 집필실인 다락방에 박쥐를 기르고 있다는 소문이 날 만큼 기인이었고, 집필에 몰두할 때 그 열정은 대단했다. 오후 8시가 되면 커다란 커피 잔을 들고 다락방으로 올라갔다. 글이 잘 써지지 않을 때는 커피를 16L씩 마셨으며, 불이 붙은 담배를 바닥에 그냥 내버렸기 때문에 바닥이 온통 불에 탄 자국으로 가득했다고 한다.
‘애거사 크리스티가 탄복한 명작’으로 유명한 카의 ‘황제의 코담뱃갑’. 사건의 발단은 이렇다. 한 여자가 약혼자와 함께 연극을 보고 돌아온 날 밤, 여자의 전남편이 그녀의 방에 몰래 들어와서는 관계 회복을 요구한다. 그때 앞집 서재에서 나폴레옹 황제의 코담뱃갑을 감상하던 집주인 로즈 경이 담뱃갑에 맞아 죽는다. 담뱃갑은 로즈 경이 그날 얻은 수집품이었다. 맞은편 집에 있던 여자와 전남편은 그 현장을 목격하지만 간발의 차이로 살인자 얼굴을 보지 못했다.
살인 사건 뒤 앞집 식구들이 소란스러운 틈을 타서 그녀는 전남편을 집 밖으로 몰아낸다. 그런데 뜻밖에도 그녀가 살인용의자로 지목된다. 무죄를 입증하려면 전남편이 자신과 함께 있었다고 증언해야 하는데, 여자는 전남편을 피해자 가족에게 보여 주고 싶지 않다. 여자의 약혼자가 죽임을 당한 로즈 경의 아들이기 때문이다. 더욱이 전남편은 여자 집에서 쫓겨난 뒤 뇌진탕으로 쓰러져 의식불명이다.
진퇴양난의 위기에 처한 여자를 구하기 위해 범죄심리학의 대가 다모트 킨로스 박사가 나선다. 인간의 두뇌를 시계처럼 분석하면서 수수께끼를 푸는 것을 삶의 보람으로 여기는 박사는 여자의 의식 속에 존재하는 것들을 세밀하게 분석해 영상을 정확하게 재현한다. 이처럼 독특한 심리적 추론 기술은, 미스터리 소설사에서 전례가 없는 새롭고 흥미진진한 착상이다.
이 사건은 도저히 일어날 수 없을 것처럼 보이는 밀실살인이지만, 전혀 예상하지 못한 데서 독자의 허를 찌른다. 그것은 밀실살인에 자주 등장하는 기계적 트릭과 달리 인간의 심리를 절묘하게 이용한 것이다. 애거사 크리스티도 두 손 들었다는 이 작품의 심리적 속임수는 감탄할 만하다. 극적인 스토리와 섬세한 캐릭터 묘사도 읽는 맛을 돋우지만 독자의 무릎을 치게 만드는 절묘한 트릭은 이 작품을 독보적인 추리소설로 돋보이게 한다.
김유경 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