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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갈피 속의 오늘]1988년 월북문인 120여명 해금

입력 | 2007-07-19 03:02:00


1988년 7월 19일 월북 문인에 대한 해금조치가 발표됐다. 시인이자 국문학자로 잘 알려진 정한모 당시 문화공보부 장관은 이날 그간 출판이 금지돼 온 월북 작가 120여 명의 작품 출판을 허용한다고 밝혔다. 서울대에서 교편을 잡을 때 제자들에게 시인 이름을 알려주지 않고 월북 문인의 시를 낭송해 줄 만큼, 정 장관 자신도 ‘반쪽’ 아닌 ‘온전한 한국문학’에 대한 열망이 컸다.

실제로 사상의 굴레에 갇혀 호명되지 않는 작가들에 대해 국문학계는 목말라 했던 터였다. 식민지 시대 중요한 분파였던 카프(KAPF·조선프롤레타리아예술가동맹), 광복 직후 좌우이데올로기의 첨예한 대립 등 빼놓지 말아야 할 문학사적 이슈들에 대한 논의는 오랫동안 금기시됐다. 이데올로기의 이분법에서 점차 벗어나고, 대학에서 월북 문인에 대한 논의가 상당히 진행됐다는 현실에 발맞춰 월북 문인에 대한 연구 성과물의 발표와 판매가 1987년 10월에 허용됐다. 이듬해 3월 납북이냐 자진월북이냐의 논란 때문에 묶여 있던 ‘향수’의 시인 정지용, 탁월한 모더니스트 시인 김기림이 해금됐다. 이어 7·19조치를 통해 전면적인 해금이 단행됐다.

숨겨 놓고 몰래 봐야 했던 자료들이 드디어 햇빛을 보게 됐다. 식민지 시대 신문과 잡지에 발표됐던 월북 문인들의 작품이 적극적으로 발굴돼 세상에 알려졌다. 한국문학사를 정리하는 저서들이 새롭게 쓰였다. 7·19조치는 정치의식과 역사의식이 성숙해진 증거이기도 했지만, 꼭 짚어야 함에도 ‘월북’이라는 꼬리표 때문에 언급하지 못했던 작가들로 인해 불구 상태였던 현대한국문학사를 온전하게 복원하는 계기가 됐다.

‘문장강화’로 잘 알려진 소설가 이태준, 서정주와 더불어 3대 천재 시인으로 불렸던 이용악과 오장환의 아름다운 시편도 모든 독자가 함께 누릴 수 있게 됐다. 따뜻하고 서정적인 시어로 식민지 시대 모국어를 지킨 시인들의 의지가 한국문학의 결핍된 부분을 풍요롭게 채워 주었다. 특히 ‘나와 나타샤와 힌당나귀’로 잘 알려진 백석은 해금 이후 많은 이의 사랑을 받고 있다. 문학평론가 김현이 ‘한국 시가 낳은 가장 아름다운 시 중 하나’로 격찬한 백석의 ‘남신의주유동박시봉방’의 몇 구절.

‘딜옹배기에 북덕불이라도 담겨오면,/이것을 안고 손을 쬐며 재 위에 뜻 없이 글자를 쓰기도 하며,/…/ 나는 내 슬픔이며 어리석음이며를 소처럼 연하여 쌔김질하는 것이었다’.

김지영 기자 kimj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