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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장난감 로봇의 신화는 계속된다

입력 | 2007-07-20 02:59:00

키트를 한 가지만 사더라도 15가지 이상의 다양한 로봇을 만들 수 있다. 본보 인턴기자인 진선주(왼쪽·서강대 4년) 씨와 신상진(고려대 3년) 씨는 지능로봇교육연구회에서 ‘로봇 체험’을 하고 난 뒤 “센서의 신호에 따라 모터의 움직임을 조절하는 프로그램까지 짜서 로봇에 이식하는 것이 매력적이다”고 말했다. 박영대 기자


《땅거미가 질 즈음 아이들은 하던 놀이를 그만두고 잽싸게 뛰었다. 그 시간이 된 것이다.

누가 신호라도 보낸 듯 일제히 초등학교 정문 앞에 있던 문방구로 달렸다. 문방구의 한쪽 공간에는 좁고 기다란 의자 여럿이 줄을 선 채 아이들을 맞았다.

등받이도 없는 의자,다리에는 뿌연 먼지가 가득했다. 하지만 상판은 반질반질하다 못해 반짝거렸다.

수십 명의 아이들을 맞은 것은 작은 TV. 스피커에서 흘러나온 소리는 소박한 ‘동네 극장’뿐만 아니라 이이들의 마음까지 가득 채웠다.

“빰∼ 빠람빰빰빠∼. 달려라 달려∼ 로보트야 날아라 날아 태권∼ 브이∼.”

군것질거리를 하나씩 입에 문 1970년대 아이들은 이처럼 흥얼거리며 자신의 로봇 친구 태권브이를 반갑게 만났다. ‘나도 저런 로봇을 만들거야’라는 꿈을 키웠다.

어린 시절 누구나 한 번쯤 감정이입의 대상으로 삼았던 로봇.

만화와 애니메이션의 주인공으로,혹은 조립식 장난감의 모델로 등장하며 아이들에게 꿈을 꾸게 했다. 정의의 편에 서서 악당에 맞서 싸우는 ‘로봇의 신화’는 지금도 유효하다. 로봇의 모습이 달라졌고 아이들이 좋아하는 조립식 장난감이 약간 변했을 뿐이다.

또 하나가 있다. 로봇은 아이만이 아닌 어른의 주제이기도 하다.》

한여름의 로봇 열풍… 마니아는 즐거워

○ 아톰-태권브이에 대한 추억

‘오토봇’이 나오는 영화 트랜스포머는 개봉 3주째 560만 명의 관객을 동원했을 정도로 인기다. 컴퓨터 그래픽 덕으로 자동차에서 로봇으로 변신하는 장면이 압권이라는 평가다. 엔터테인먼트 로봇 제조업체인 유진로봇의 신경철(51) 사장에게 로봇은 어릴 적 추억일 뿐만 아니라 현재의 취미이자 직업이다. 트랜스포머에 대한 그의 평가는 다소 달랐다.

“조금 더 ‘과학적’이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더군요. 변신하는 모습이 멋지기는 한데 ‘판타지’에 가깝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하하.”

그는 ‘아톰 세대’다. 아톰이 에너지를 충전하는 모습과 부서지면 팔뚝에서 튀어나왔던 전기회로 등을 보며 로봇에 대해 어렴풋이나마 개념을 잡아갔다. 학창시절에는 조립식 장난감을 가지고 놀며 꿈을 키웠고, 지금은 로봇을 만드는 일에 열정을 바치고 있다.

1980년대 미국 유학 시절 애니메이션으로 봤던 트랜스포머에서 영감을 받아 2004년 ‘트랜스봇’이라는 로봇을 개발하기도 했다. 리모컨의 단추를 누르면 걸어가던 로봇이 자동차로 변신해 달리기 시작한다. 양발로 서서 걸을 수 있고 적외선 기관총을 장착하고 있다.

월간 ‘과학동아’는 로봇 태권브이의 실현 가능성에 대해 각계 과학자들에게 자문을 구한 적이 있다. 태권브이를 실제로 만드는 데 필요한 기술과 구현 가능성을 알아보기 위해서다. 어쩌면 황당하기도 한 자문 요청에 한국과학기술원(KAIST) 기계공학과 교수이자 휴머노이드 로봇 연구센터 소장인 오준호(53) 교수는 진지했다.

“어린 시절 로봇을 닮은 뭔가를 만들기 위한 열정과 호기심이 대단했다. 집에 있는 시계와 녹음기, 재봉틀이 항상 분해와 조립의 과정에 있었던 것은 모두 로봇 때문이었다. 나의 열정과 꿈을 키우는 데 로봇은 그만큼 큰 역할을 했다.” 그가 진지했던 이유다.

○ 창조의 동력

유년 시절에 만난 로봇은 아이들의 친구다. 가수 ‘카사&노바’는 ‘로보트 태권브이’ 주제가를 새로 부르면서 ‘내 친구는 태권브이’라는 가사를 추가했다. 든든한 친구임을 강조하기 위해 ‘울트라 캡∼숑 파워 태권∼브이’라는 재미있는 가사도 만들었다.

로봇에 대한 아이들의 관심은 자연스레 ‘만들기’로 이어진다. 초등학교 시절에 로봇 플라스틱 모델(프라모델)을 만들며 꿈을 키우던 아이들은 중고교생이 되면서 더 정교하고 다양한 것을 만들어 낸다.

오 교수는 중학교 시절 자신이 직접 만들었던 ‘증기자동차’를 잊지 못한다. 로봇 만드는 일을 하겠다는 일념으로 온갖 것을 만들어 대던 시절이었다. 잡지에 나온 사진만 갖고 수제 ‘증기자동차’ 만들기에 도전했다. 알코올램프로 물이 든 분유통을 가열해 만든 증기로 바퀴를 굴렸다. 그는 “나도 모르게 굴러가는 증기자동차와 함께 달리고 있었다”며 당시의 기쁨을 회상했다.

애정이 있으면 열정이 생기는 법. 회사원 김지환(35) 씨는 어린 시절 태권브이의 영향으로 프라모델에 관심을 가졌다. 초등학교 때는 조립식 로봇을 만들어 친구들과 바꿔 가며 놀았고, 중학교 때는 탱크, 비행기로 그 영역을 넓혔다.

김 씨는 공학적 측면보다는 세밀한 묘사에 관심이 많았다. 최근에는 ‘피겨’(만화나 영화 등에 등장하는 주인공의 정교한 플라스틱 모델)에 관심을 쏟고 있다. 직업도 항공 정비사에서 캐릭터 사업가로 바뀌었다. ‘로보트 킹’이란 애니메이션 캐릭터를 활용한 사업이다.

태권브이 동호회 운영자를 6년째 맡고 있는 김 씨는 “어린 시절의 열정이 바탕이 돼 어른이 되어서도 실리콘으로 정교한 캐릭터를 만드는 사람이 적지 않다”며 “어린 시절의 관심이 취미 혹은 일의 바탕이 된 셈”이라고 말했다.

포털사이트 다음에는 로봇에 관한 카페만 1102개가 있다. 초등학생부터 성인에 이르기까지 회원의 연령대는 다양하다. 로봇을 만들고 싶어서, 로봇 이야기가 좋아서, 아들에게 로봇 이야기를 해 주기 위해서, 어릴 적 꿈을 이루기 위해서 가입하는 등 그 이유도 갖가지다. 프라모델, 종이 로봇, 레고 로봇, 창작 로봇, 축구 로봇 등 로봇의 종류도 적지 않다.

○ 직접 만들고 프로그램 조작하며 놀아

‘관심을 보일 때 그것을 보여 줘라.’

아이들을 가르칠 때 유용한 격언이다. 로봇은 아이들에게 과학 지식을 가르칠 수 있는 유용한 수단이기도 하다. 로봇 장난감은 단순한 장난감에만 머물지 않는다.

아빠 세대의 로봇과 요즘 로봇에는 차이가 있다. 로봇들이 다양하게 변신하고 주인공도 한 명에서 여러 명으로 바뀌었다. 로봇 태권브이와 트랜스포머를 비교해 보면 그 차이가 확연해진다.

아빠 세대들은 조립식 플라스틱 모델을 가지고 놀았지만 ‘로봇 키즈’는 직접 로봇을 만들면서 논다. 적외선 센서와 소리 센서 등을 활용하고 관절에 들어가는 미세 모터나 무선 조정기를 사용하는 것은 기본이다.

최근에는 로봇에 동작 프로그램을 직접 입력하는 장난감까지 나왔다. 앞에 장애물이 있을 때 어떻게 움직일지, 빛을 감지했을 때는 어떻게 반응해야 하는지를 미리 입력해 장난감 로봇이 스스로 움직일 수 있도록 만들어졌다.

로봇 만들기 교육업체인 지능로봇교육연구회에는 100여 종의 로봇이 있다. 고급 로봇 키트는 대학생 등 성인이 즐기는 장난감이기도 하다.

로봇을 중심으로 한 과학적이고 공학적인 장난감은 아이의 장난감에 무관심했던 어른들을 놀라게 할 정도다. 교육용 완구 수입·교육 업체인 큐이디는 수소자동차의 원리를 그대로 활용한 ‘수소 레이싱카’를 선보였다.

레고는 조립식 블록 장난감과 전자 기기를 결합시킨 제품도 선보였다. 조립을 마친 뒤 프로그램을 입력하면 블록으로 만들어진 장난감이 로봇처럼 움직인다.

○ 한발 더 나아간 창의력

과거에 비해 아이들이 조립식 장난감을 만들기 쉬워졌지만 로봇 애호가들은 ‘단순한 따라 만들기’를 경계한다.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김문상(50) 프론티어 지능로봇 사업단장은 초등학교 4학년생 막내아들 때문에 여전히 로봇 장난감 분야의 얼리어답터다.

“요즘 로봇 장난감은 부품이 잘 만들어져 있기 때문에 자칫하면 아이들이 단순한 조립에만 빠질 수 있다. 로봇에 장착된 센서의 신호를 받아 로봇을 독창적으로 움직일 수 있도록 하는 프로그램 분야에서 창의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유도하면 좋다.”

아이의 창의력은 어른들이 기다릴 때 발휘되기도 한다. 큐이디의 이양준 마케팅팀장은 아이들의 창의력에 대한 일화를 소개했다.

“만들기 수업 시간에 부모와 수업을 듣는 아이 가운데 특이한 잠자리 모형을 만든 아이가 있었다. 이 모형은 조립식 제품을 고안한 본사의 수백 가지 표본에도 없던 독특한 것이었다. 다른 아이들은 부모 ‘도움’ 때문에 상자 표지에 있던 자전거 모형밖에 만들지 못했지만 그 아이는 혼자서 자신의 생각을 현실로 만들었다는 걸 알게 됐다.”

트랜스포머 때문에 로봇의 추억에 빠진 여름. 아들, 딸과 함께 로봇을 만들며 더위를 잊으면 어떨까. 또 한 가지 중요한 것이 있다. 딸이 로봇 조립에 관심이 없을 것이라고 예단하지는 말자.



글=허진석 기자 jameshuh@donga.com

사진=박영대 기자 sannae@donga.com

디자인=김성훈 기자 ksh97@donga.com

▼로봇 재미있게 만들기▼

다음 로봇카페 1102곳에 정보 가득… 부품 사고팔기도

로봇 장난감은 종류가 다양하다. 인터넷 쇼핑몰 등에서 로봇으로 선보이는 상품은 이미 만들어진 완제품인 것이 많다. 그야말로 장난감이다. 로봇 조립에 대한 추억이 있는 사람들은 이와 다른 종류를 찾는다.

완성의 기쁨, 창의력, 과학 지식. 이런 단어를 담고 있는 장난감은 기본적으로 ‘조립의 과정’을 거쳐서 탄생한다. 같은 재료를 이용하지만 여러 가지 다른 모형을 만들 수 있는 제품이 창의력을 발휘할 수 있는 여지가 더 큰 것은 물론이다.

키트로 되어 있는 상품을 구입해 로봇을 만들어 보는 게 가장 일반적인 방법이다.

한 가지 키트를 구입하더라도 센서와 구조 등을 바꿔 여러 가지 기능을 하는 로봇을 만들어 볼 수 있다. 예컨대 펜을 꽂아 글자나 그림을 그리는 로봇을 만들었다가 선을 따라다니며 물건을 옮기는 로봇을 만드는 식이다. 키트 가격은 종류에 따라 다르지만 10만 원 안팎인 것이 많다.

단품으로 된 것도 있다. 라인을 따라가거나 소리가 나는 쪽으로 움직이는 로봇이다. 센서의 신호만 처리하는 비교적 간단한 제품이다.

전문적인 지식을 좀 더 쌓았다면 모터나 음성인식 모듈 등을 구입해 자신만의 로봇 작품을 만들 수 있다. 인터넷 로봇 만들기 카페에는 중고 부품을 사고파는 글이 심심찮게 올라오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싼 가격에 구입해 꿈을 현실로 만들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