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려운 한미 자유무역협정(FTA)도 해냈는데 유럽연합(EU)과의 FTA야 쉽게 할 것이다.”
많은 국민이 이렇게 생각했겠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당초 통상 전문가들은 △한미 FTA의 학습효과 △농산물의 민감성이 덜한 점 △한국 사회 일각에 반미(反美) 감정은 있지만 반EU 감정은 거의 없는 점 등의 이유로 한-EU FTA 협상은 한결 수월할 것으로 전망했다.
하지만 EU가 지식재산권과 비관세장벽 등을 무기로 한국에는 생소한 요구들을 쏟아 내는 등 공격의 수위를 높이면서 상황은 다른 양상으로 전개되고 있다.
○추급권-공연보상청구권 등 요구
19일(현지 시간) 한국협상단에 따르면 EU는 추급권(追及權)과 공연보상청구권 제도의 도입을 한국에 요구했다.
추급권은 저작물이 경매 등을 통해 매매될 때마다 발생하는 이익의 일부를 저작권자에게 로열티로 지불하는 것이다. 또 공연보상청구권은 카페나 레스토랑, 비행기에서 음악을 틀 경우 저작권자뿐 아니라 연주자나 음반제작자에게도 보상을 해 주는 제도다.
이 같은 권리는 한국에 매우 생소한 개념이라는 게 협상단의 반응이다.
우선 공연보상청구권은 한국에서 백화점 등 비교적 큰 규모의 업체에만 제한적으로 도입돼 있을 뿐이다. 따라서 영세 커피숍에도 이 제도가 적용되면 이들의 영업에 상당한 지장을 초래할 것으로 우려된다.
한국 협상단의 남영숙 규제이슈 분과장은 “추급권은 형성 단계에 있는 우리 미술시장의 성장을 저해할 수 있고 공연보상청구권도 영세 사업자들을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EU는 이 밖에도 ‘짝퉁’(불법 복제 상품)에 대한 처벌 강화, 원산지 지리적 표시제 등 지재권 관련 제도의 도입을 잔뜩 요구하고 있다.
○관세보다 치열한 비관세 공방
당초 EU는 한국 측에 제시한 양허안에서 자동차 시장을 7년 이내에 개방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여기에는 한국이 유엔 유럽경제위원회(ECE)의 자동차 안전 규정 102가지를 이행해야 한다는 전제조건이 달려 있다. 이른바 비관세장벽.
한국 협상단 관계자는 “자동차는 이번 협상의 최대 수혜산업인데 이렇게 조건을 달아 놓으면 EU 시장은 ‘그림의 떡’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비관세장벽에 대해서는 한국 협상단도 “관세 문제보다 자신이 없다”고 자인할 정도다. EU는 스스로 높은 장벽을 쌓으면서 역으로 한국의 비관세장벽을 공격하고 있다.○금융 분과 등 일부 합의
18일 협상에선 금융 분야에서 상당 부분 가시적인 합의가 있었다.
양측은 이날 △금융기관 임원의 국적 제한 철폐 △상대국 금융기관의 현지 지급결제시스템 이용 등에 합의했다. 이에 따라 한국 금융기관의 EU 진출 행보도 더 빨라질 것으로 기대된다.
김한수 한국 측 수석대표는 “금융 분야는 생각보다 빨리 진행되고 있고 나머지도 예상했던 속도로 가고 있다”고 평가했다.
브뤼셀=유재동 기자 jarret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