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나가던 한국 영화에 지난해부터 이상 징후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2006년 개봉된 108편의 한국 영화 가운데 88편이 적자를 봤다. 영화 10편을 만들면 8편은 제작비조차 건지지 못했다. 해외 수출은 68%가 감소했다. 올해 들어서도 하향세가 이어지고 있다. 상반기 한국 영화의 시장점유율은 2002년 이후 가장 낮은 47.3%로 집계됐다. 마침내 국내 3대 복합영화 상영관인 메가박스가 외국 자본에 매각됐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1999년 ‘쉬리’의 대성공 이후 호황을 누려 온 한국 영화가 잠시 숨을 고르는 걸까, 아니면 침체기로 들어선 것일까. 메가박스의 매각만 가지고 그렇게 비관할 필요는 없다. 전국적으로 1847개에 이르는 스크린은 국내 수요에 비해 너무 많다는 지적이 전부터 있었다. 시장 경쟁에서 뒤처진 회사가 사업을 접는 것에 과민 반응을 보일 것까지는 없다. 호주 자본이 선뜻 인수에 나선 것도 한국 영화시장을 아직도 매력적이라고 판단하기 때문일 터이다.
▷영화계의 한 인사는 현 국면을 ‘피로현상’이라고 분석했다. ‘절대강자’ 할리우드에 맞서 1000만 이상의 관객을 끌어 모은 국산 영화를 연속해서 만들어 낸 뒤 에너지가 크게 소모된 상태라는 얘기다. 지난 호황기는 그야말로 애정을 갖고 한국 영화를 열심히 봐 줬던 팬들이 만든 것이다. 그러나 적지 않은 국민이 차츰 영화에서 멀어지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영화를 봐야 대화에 낄 수 있었던 ‘영화 보기 붐’이 식어 가고 있는 것이다. 안팎의 난관을 극복해야 할 영화계의 내부 역량이 신통치 않은 게 위기의 본질이다.
▷아무리 위축됐다 해도 지난해 영화 관객은 연인원 1억5000만 명에 이르렀다. 1990년대에 비해 3배 늘어난 규모다. 잠재적 기반은 튼튼하다. 영화계는 거품을 걷어 내고 질적 수준을 향상시키는 데 역량을 모아야 한다. 식상한 소재, 구태의연한 제작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진짜 위기가 온다. 국민의 애국심에 기대는 마케팅에는 한계가 있다. 비관도, 낙관도 할 수 없는 지금이 새판 짜기에 적당한 때다.
홍찬식 논설위원 chansi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