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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실 X파일]내 연구실은 산과 들… 식물종자 찾아 23년

입력 | 2007-07-20 02:59:00


1994년 4월 경기 포천시와 강원 화천군 경계의 광덕산. 모데미풀 꽃이 활짝 피어 있는 걸 발견했다. 우리나라 특산종이자 희귀 식물이기에 종자를 수집하려고 6주 뒤 그곳을 다시 찾았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종자는 이미 떨어지고 없었다. 다음 몇 해 동안 같은 곳에 계속 갔지만 끝내 종자를 찾지 못했다. 애가 탔다.

10년 뒤 4월 충청도 월악산. 운 좋게도 모데미풀을 또 발견했다. 하지만 개화기가 막 지나 종자가 미숙한 시기. 열흘 간격으로 두 차례 더 가봤지만 여전히 채취하기엔 일렀다.

그달 말 연이은 야외조사로 인한 과로 때문에 결국 병원 신세를 졌다. 입원 중에도 머릿속은 온통 모데미풀 종자 생각뿐이었다. 퇴원하자마자 의사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월악산으로 달려갔다. 설마 했는데, 역시 늦었다. 떨어진 종자는 어디로 갔는지 찾을 수가 없었다.

2005년 5월. 월악산을 다시 찾았다. 지성이면 감천이라 했나. 드디어 이번엔 종자를 손에 넣을 수 있었다. 처음 모데미풀을 발견한 지 11년 만이다.

야생하는 풀의 성숙한 종자를 얻으려면 자라는 장소와 종자의 성숙 시기를 오랫동안 주의 깊게 관찰해야 한다. 모데미풀의 경우처럼 같은 장소를 몇 차례 가도 허탕 치기 일쑤다.

필자는 무모하게도 23년간 3200일 이상을 산과 들로 다니며 12만 장의 야생들풀 사진을 찍고 1500종 이상의 종자를 모았다. 이달 초에는 광복 전에 멸종됐다고 알려진 해변황기를 인천 강화도에서 한 포기 발견해 종자를 수집하는 데도 성공했다.

1999년부터 정부의 지원을 받아 ‘야생초본식물자원종자은행’을 운영하면서 이들 종자 700여 건을 연구자들에게 나눠줬다. 하지만 5년 뒤 은행은 문을 닫고 말았다. 논문을 많이 쓰지 못했다는 이유로 평가에서 탈락한 것이다. 계속 발품을 팔아 종자 하나라도 더 수집하는 게 논문보다 우선인데, 안타까웠다. 하지만 이 일이 오히려 새옹지마가 될지도 모르겠다. 그동안 모은 사진과 종자, 틈틈이 써 온 원고를 정리해 3000쪽이 넘는 방대한 생태도감을 준비할 여유가 생겼으니 말이다.

국내에는 자생식물과 귀화식물, 재배식물 등을 합해 5000종이 넘는 식물이 자라고 있다. 특별한 자연자원이 없는 우리나라에서 햇빛과 물만 있으면 생산 가능한 식물은 소중한 자원이다. 하지만 지구온난화로 인한 생태계 변화와 국토 개발로 이 자원이 점점 사라지고 있다.

지금껏 수집한 종자와 10월경 나올 생태도감이 후학들의 연구에 값진 밑거름이 되길 바란다.

강병화 고려대 환경생태공학부 교수 seedbank@korea.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