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그리고 그 밖의 것들/수전 손택 지음/408쪽·1만5000원·이후
에세이스트들과 평론가들이 으레 그렇듯 수전 손택(1933∼2004·사진)도 창작에 대한 열망이 컸다. ‘해석에 반대한다’ ‘강조해야 할 것’ 등 탁월한 평론집을 통해 ‘뉴욕 지성계의 여왕’으로 불렸지만, 그는 소설가이길 원했다.
‘나, 그리고 그 밖의 것들’은 그런 열망이 담긴 소설집이다. 8편의 단편은 이 지적인 여성이 소설 창작에 대해서도 얼마나 열정적인지, 소설이 투영해야 할 ‘지금, 여기’에 대해 얼마나 깊은 문제의식을 갖고 있는지를 보여 준다.
‘인형’은 ‘오직 즐거운 일만 하고 싶은’ 가장이 자신을 대신할 인형을 제작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잘 만들어진 인형은 사내와 똑같이 아침에 아이들의 볼에 뽀뽀해 주고 뉴욕타임스를 읽는다. 업무 파일을 검토하고 담배를 피우고 판매전략 회의에 참가한다. 업무 스트레스로 인형이 눈물을 흘릴 정도니 사내는 얼마나 고단한 삶을 살아온 것인지! 이제 즐겁게만 살아야겠다고 생각한 것도 잠시, 인형마저 현실을 견딜 수 없다고 한다.
손택이 주목하는 것은 아름답지 않은 현대의 풍경이다. 자기 인생을 대신 살아주는 인형을 보고서야 얼마나 피로하게 지냈는지 깨달을 정도로 현대인의 삶은 피폐하다. 단편 ‘베이비’는 부모와 정신과 의사의 상담을 통해 ‘약’을 하고 부모의 공기총을 들고 나가는 미국 소년의 일상을 고발하는 듯하다. 그렇지만 따라 읽다 보면 소년뿐 아니라 자녀와 전혀 소통하지 못하는 부모에게서 더욱 큰 문제를 발견하게 된다. 부모의 일방적인 대사만으로 이루어진 형식을 통해 작가는 주제를 명확하게 드러낸다.
손택만의 지적인 풍자가 어느 것보다 잘 드러난 작품은 ‘미국의 영혼들’이다. 청교도적인 삶을 살던 ‘평면얼굴 아가씨’가 ‘음란 씨’를 만나 새로운 인생을 산다는 내용. 그것은 물론 금욕과 방만이 혼재한 미국 사회에 대한 상징이다. ‘평면얼굴 아가씨’의 유언장에서 작가의 사유는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미국이여, 그대에게 경의를 표한다. 특히 아름답지 못한 부분에 대하여. 밖에서는 친절하고 재미있으면서 안에서는 비열한 그대와 그대의 국민을 나는 최대한 좋게 보려고 노력했다. 나는 내 인생을 그대를 발견하는 데 보냈다. 다시 말하면 나 자신을 발견하는 데.”
김지영 기자 kimj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