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게 가장 소중한 가치는 무엇인가. ‘세계가치관조사’(World Value Survey)기구가 80여 개국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우리 국민은 75%가 경제 안정을 최우선 가치로 선택한 것으로 나타났다. ‘인간적인 사회로의 발전’(16.8%), ‘아이디어가 중시되는 사회’(4.6%), 혹은 ‘범죄 소탕’(3.5%) 등에 비해 압도적으로 높은 수치다. 자세한 국가별 비교는 동아일보 부설 화정평화재단이 분석을 끝내는 내달에 나올 예정이지만 기초 자료만 대충 봐도 우리는 다른 조사대상 국가들과 비교가 안 될 정도로 먹고사는 문제에 관심이 높았다.
국내 여러 여론조사에서도 절대 다수의 유권자는 ‘경제대통령’을 뽑겠다고 답한다. 그래서 그렇겠지만 대선주자들은 자신들의 이미지에 경제를 부각하려 들고 장밋빛 경제정책을 공약의 진열장 맨 앞줄에 전시한다. 이명박 전 서울시장은 대기업 경영인 출신임을 강조하고,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는 “올바른 정치의 결과로서 풍요로운 경제”를 약속하며, 손학규 전 경기지사는 공직 시절의 투자 유치를 치적으로 내세운다. 현대사회에서 경제가 더없이 중요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러나 이런 현상은 두 가지 의문을 남긴다.
도대체 왜 ‘경제대통령’인가
우선 우리가 지나친 경제지상주의에 빠져 황금만능의 풍조가 이 사회를 지배하게 되지 않을까 하는 점이 그 하나다. 대선주자들의 발언과 유권자들의 심리를 보면 마치 경제발전이 대한민국의 국시라도 된 것 같다. 경제발전은 필요하지만 그것이 국가나 개인의 궁극적 목표처럼 되는 것은 옳은가. 우리 모두가 그에 몰입해 정작 더 소중한 가치를 망각하는 것은 아닐까. 예를 들어 5·16 때 ‘혁명공약’에서 반공을 국시로 내세운 것은 사리에 맞지 않는 일이었다. 국시는 자유민주주의이고 반공은 그를 지키는 수단일 뿐이다. 공산주의를 반대하는 것 자체가 이념이 아닌 것처럼 경제도 국가의 어떤 고귀한 이념과 중요한 가치를 구현하기 위한 수단이어야 한다.
우리는 평생 제대로 먹지도 입지도 않고 모은 수십억 원의 재산을 장학금으로 쾌척한 할머니의 눈물겨운 이야기에 종종 감동한다. 결과를 놓고 말하자면 그의 인생 목표는 돈이 아니라 더 숭고한 가치인 ‘베풂’이었다. 재화가 사회구성원들의 생활을 풍요롭게 해 주고 자신을 향상시키기 위한 수단인 것처럼 경제는 그 자체가 목표가 아니라 우리 사회를 아름답게 만들어 가기 위한 수단인 것이다.
또 다른 의문 하나는 과연 국민이 원하는 ‘경제대통령’의 정의는 무엇인가 하는 점이다. 현대사에서 경제가 융흥했던 시기에 이론경제나 실물경제에 정통했던 사람이 국가원수였던 사례는 찾기 힘들다. 개방경제로 중국을 다시 세운 덩샤오핑의 이력에도 경제는 없다. 11년 6개월을 집권하면서 영국병을 고친 마거릿 대처 총리도 옥스퍼드대 출신 변호사로 정치에 입문한 사람이다. ‘잃어버린 10년’을 회복시킨 일본의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리는 경제학을 전공했지만 중의원 비서로 정계에 입문한 전문 정치인이다.
이른바 ‘경제대통령’이 집권하는 것과 다른 덕목을 갖춘 대통령이 진짜 경제 전문가를 등용해 소신껏 일하도록 하는 것 중 어느 쪽이 경제발전에 도움이 될까. 우리의 경우 국가경제가 가장 융흥했던 시기는 ‘준비된 대통령’이라며 해박한 경제지식을 설파하던 DJ 정권 때가 아니다. 오히려 경제와 가장 멀어 보이는 직업군인들이 집권했던 시절 국민은 단군 이래 최대의 풍요를 누렸다. 그때 명경제장관, 명경제수석비서관이 나왔던 것은 국가원수들이 경제를 전문가에게 맡겼기 때문이다. ‘경제대통령’이 나오면 경제가 발전하리라 기대하는 것은 마치 사격술 뛰어난 일등 사수가 사단장을 맡으면 부대의 전투력이 향상될 것으로 기대하는 것과 뭐가 다를까.
지도자가 갖춰야 할 덕목들
경제적 부흥은 외교와 국방이라는 든든한 울타리와 화합된 분위기 속에 국민의 분발이 만들어 내는 결과적 사회현상이다. 따라서 누가 더 대통령에 적합한지를 판단할 때는 리더십과 실행력, 신뢰성, 그리고 화합의 성격 등 이른바 성공하는 사람들의 공통적 능력까지 폭넓게 봐야 경제적 성과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지난 4년여의 세월은 균형 잡힌 지혜와 건전한 상식, 그리고 넓은 포용력을 겸비한 지도력이 국가 운영에 얼마나 소중한지를 말해 주고 있지 않는가.
이규민 大記者 kyuml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