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사람들은 유럽과 일본이 미국보다 장사를 잘한다고 생각했다. 레스터 서로가 1992년에 펴낸 ‘머리를 맞대고: 다가오는 일본 유럽 미국의 경제전쟁’은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 목록에 6주 이상 올랐다. 이 책은 유럽이 경제전쟁의 승자가 된다고 예언했다.
그 뒤 사정은 완전히 변했다. 미국의 의기소침함은 의기양양함으로 변했다. 이런 새로운 자신감은 무엇보다 인터넷의 탄생과 관련이 있다. 자크 시라크 전 프랑스 대통령은 인터넷이 ‘앵글로색슨 네트워크’라고 불평한 바 있다. 그는 스칸디나비아 나라들을 제외한 유럽 대부분의 국가처럼 프랑스 역시 온라인 기술에서 미국에 한참 뒤졌다고 통탄했다.
그렇지만 미국인들이 모르는 사실이 있다. 최근 수년 동안 상황이 완전히 역전됐다는 것이다. 특히 전화선 대신 광대역 통신망을 이용한 초고속 인터넷이 탄생하자 미국은 다시 뒤처진 나라가 됐다.
2001년만 해도 일본과 독일에서 고속인터넷 사용자의 비율은 미국의 절반에 불과했다. 프랑스로 말하면 4분의 1에 불과했다. 그러나 2006년 말 이 세 나라의 100명당 광대역 인터넷 사용자 수는 미국을 넘어섰다.
더 놀라운 것은 미국의 이른바 ‘고속’ 통신망이 다른 국가들의 표준에 비해 느리다는 것이다. 프랑스의 광대역 통신은 미국보다 평균 세 배 이상 빠르다. 일본의 경우엔 열 배 이상 빠르다. 그뿐만 아니라 이 나라들의 통신 요금은 미국보다 훨씬 싸다.
이렇게 된 결과 미국은 인터넷에 광대역이 적용된 신기술을 사용하는 데도 뒤처진다. 프랑스는 인터넷 TV 사용자 수가 세계 1위다. 미국의 경우 상위 10개국 안에도 들지 못한다.
미국에서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인가? 무엇보다도 정책의 낙후성을 들 수밖에 없다. 미국 정부는 캘리포니아 주가 에너지 정책에서 범한 것과 똑같은 실수를 인터넷 정책에서 저질렀다. 규제가 없을 경우 시장의 경쟁이 효과적이지 못할 수 있다는 현실을 잊었거나 고의로 무시한 것이다.
미국의 인터넷 산업이 전화선 시대에 번성한 것은 정부가 개별 업체의 시장 지배를 허용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빌 클린턴 행정부의 앨 고어 부통령이나 리드 헌트 연방통신위원회 위원장은 업체 간 공정한 경쟁이 지속되도록 조정했다. 정보통신 분야의 거대 기업들은 이런 노력에 저항했다. 월스트리트저널이 이들을 ‘프랑스 관료주의자 같다’고 조롱할 정도였다.
조지 W 부시 행정부가 마이클 파월을 연방통신위원회 위원장으로 앉히자 거대 정보통신기업들은 원하는 대로 할 수 있게 됐다. 광대역 통신 시장에서 경쟁은 거의 일어나지 않게 됐다. 운이 좋아 봤자 지역 케이블 독점기업과 지역 전화 독점기업의 서비스 사이에서 택일할 수 있을 정도였다. 가격은 높고 서비스의 질은 나빴다.
반면 최근 비즈니스위크 기사를 보면 진짜 ‘프랑스의 관료’들은 경쟁을 부추기기 위해 적절한 규제를 가했다. 이 결과 프랑스의 소비자들은 수많은 업체 가운데 적합한 서비스를 선택할 수 있었다. 무료 음성인식 통화, 인터넷 TV, 무선랜 등 무엇이든지 미국에서 살 수 있는 것보다 싸고 빠르게 손에 넣을 수 있게 됐다.
미국에서 광대역 통신이 낙후되면서 국가 경제 전체가 얼마나 큰 해악을 입었는지 판단하기는 아직 이르다. 그러나 프랑스인들이 맹목적 자유경쟁주의에 사로잡히지 않음으로써 좋은 결과를 낳은 분야가 단지 건강보험뿐만이 아니었다는 것은 흥미로운 사실임에 틀림없다.
폴 크루그먼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