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
명심하라, 시간은 돈이다.
하루 노동으로 10실링을 버는 자가 산책을 하거나 방 안에서 한나절을 게으르게 보냈다면 설사 6펜스밖에 쓰지 않았더라도 단지 그것만을 쓴 게 아니다. 그에 더해 5실링을 더 지출한, 아니 내다 버린 셈이다(중략).
명심하라, 신용에 영향을 미칠 만하면 아무리 사소한 행동이라도 주의해야 한다. 채권자가 오전 5시나 오후 8시에 그대가 작업하는 망치 소리를 듣는다면 그는 앞으로 반년이라도 흔쾌히 참아 줄 것이다.
그러나 마땅히 노동해야 할 시각에 그대를 당구장에서 발견한다든가 선술집에서 그대의 목소리를 듣는다면 그는 다음 날 아침이 되자마자 그대가 준비할 형편이 되든 안 되든 당장 돈을 요구하러 달려 올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이런 일은 네가 채무를 기억하고 있는 증표이며 네가 주의 깊고도 성실한 사람이라는 점을 남에게 보여 줌으로써 너의 신용은 증대될 것이다.
■해설
위의 글은 인하대가 2008학년도에 처음 시행하는 논술고사에 대비한 제2차 모의시험(인문계열) 제시문 중 하나다. 독일의 사회학자 막스 베버의 ‘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에서 발췌한 것으로 자본주의 사회의 핵심적 가치이자 윤리인 근면, 성실, 절약의 의미와 그것의 장점을 밝히고 있다.
베버는 17, 18세기 종교개혁을 통해 중세 로마 가톨릭에 반기를 든 프로테스탄티즘의 교리가 새로운 직업윤리로 자리 잡음으로써 자본주의의 특징이 되었다는 견해를 제시했다.
가톨릭의 교리는 직업을 고정된 계층 안에 존재하는 일정한 지위로 봤다. 이에 주어진 사회적 지위에 순응할 것을 주장함으로써 현실적인 자본주의 활동을 저지하지 못했다. 그 결과 자본주의 활동은 도덕 외적이고 모험적으로 발전하게 돼 결국 경제생활을 윤리화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반면에 프로테스탄티즘은 세속적 직업을 긍정적으로 평가할 뿐만 아니라, 일정한 직업을 천직으로 생각하고 개인의 쾌락과 영예를 희생시키면서 엄격한 규율과 조직 아래에서 자신의 직책에 헌신적으로 노력하는 금욕주의적 직업윤리를 교리로 삼았다. 이 때문에 이것이 곧 자본주의 정신이 돼 근대 시민사회의 생활기조가 됐다고 분석했다.
그러면 왜 유독 서양에서만 근대 자본주의가 발생했을까.
베버는 이 질문에 대답하기 위해 1904, 1905년에 걸쳐 여러 논문을 집필했다. ‘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은 이 논문들을 엮어 책으로 펴낸 것이다.
베버는 ‘서양’을 단순히 지리적 개념으로 파악하지 않고 오히려 특정 사고방식을 구분하는 기준으로 사용했다. 그 구분 기준이란 다름 아닌 ‘합리성’의 개념이다. 서양 문명의 핵심적인 특징은 합리성이며, 이 합리성이 자본주의의 형성과 발달에 결정적인 역할을 수행했다고 봤다.
합리성을 특징으로 하는 프로테스탄티즘이 어떻게 자본 축적에 기여하고 있으며, 자본주의적 사회질서를 유지하는 기본 이상을 제공하고 있는지를 보여 주는 것이 바로 베버의 목적이었다. 프로테스탄티즘으로부터 합리성의 핵심 특징을 설명할 때 주목되는 개념은 이른바 ‘소명’과 ‘예정설’이다. 자신의 직업을 신의 소명이라 믿고, 예정설을 통해 구원을 확신하는 사람들이 겉으로 드러낼 수 있는 경험적 증거, 즉 성실한 노동의 결과물인 자본이 형성되고 축적된다고 했다.
금욕, 이윤 추구, 절약, 저축, 자본 축적, 소명, 예정 등과 같은 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은 근대 사회의 시민적·경제적·합리적 태도를 배양하는 데 큰 역할을 했을 뿐만 아니라 현대인에게도 필수적인 생활 덕목이 되고 있다. 한 경 동 한국외국어대 경제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