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가니스탄 정부가 ‘한국인 인질과 탈레반 수감자 교환 불가’라는 강경 자세와 ‘협상 지속’이라는 온건 기류 사이에서 힘든 줄타기를 하고 있다. 탈레반의 요구를 선뜻 받아들이자니 이들의 세력 확대가 두렵고, 무시하자니 극한상황 초래 위험이 부담되는 것이 이들의 현실이다.
▽인질 교환이 미칠 파장=아프가니스탄 정부는 인질과 탈레반 수감자의 교환 요구를 받아들일 경우 탈레반의 세력이 확대될 것을 우려하고 있다.
특히 ‘(한국인들이 납치된) 가즈니 주에서 밀리면 안 된다’는 게 아프간 정부의 판단이다. 세력을 확대하고 있는 탈레반이 남부에서 수도인 카불로 진격해 가는 관문이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크리스천사이언스모니터는 24일 “한국인들이 가즈니 주 고속도로에서 납치된 것은 탈레반이 수도인 카불에 근접해 움직이고 있음을 시사하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곳에서의 주도권 유지가 하미드 카르자이 대통령의 국내적 입지와 직결된다는 설명이다.
실제로 탈레반 수감자 석방은 아프간 정권에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영국의 더 타임스는 이날 아프간 정부가 3월 이탈리아 기자 석방을 위해 탈레반 사령관들 가운데 한 명인 우스타드 무하마드 야사르를 풀어준 뒤 벌어진 일을 상세히 보도했다.
이에 따르면 야사르는 석방된 뒤 카불에서 서남쪽으로 65km 떨어진 와르다크 주를 ‘미니 탈레반 지역’으로 만들었다. 20년 넘은 독일 병원은 폐쇄됐고 위성 안테나를 갖고 있던 주민은 두들겨 맞았다. 정부 협력자는 처형됐으며 대부분의 주민이 탈레반 전사로 변했다고 이 신문은 전했다.
▽국제사회 비난도 부담=대외적으로도 아프간 정부가 수감자를 석방하면 국제사회의 비난에 시달릴 개연성이 크다. 미국 등이 주도하는 테러와의 전쟁에 협력하는 것을 존립 기반으로 삼아 온 카르자이 정권으로서는 국제사회의 비난은 치명적이다.
게다가 탈레반의 요구를 수용해 수감자를 풀어줄 경우 각종 범죄세력의 발호나 추가 납치를 부채질할 수 있다는 점도 아프간 정부엔 큰 부담이 되고 있다.
압둘 하디 칼리프 내무차관은 23일 “헌법과 국익에 어긋나는 협상을 할 뜻은 없다”고 선을 그었다.
그러나 24일이 되자 분위기는 사뭇 달라졌다. 정부 협상단 대표인 키얄 무하마드 후세인 의원은 이날 “협상단은 탈레반 측과 1시간 동안 전화 통화를 했고 석방 요구 대상 수감자 명단을 달라고 요구했다”고 덧붙였다.
탈레반 지휘관 압둘라 잔의 대변인은 AIP와의 전화 통화에서 “23명의 탈레반 수감자 명단이 이미 정부 협상단에 전달됐다”고 말했다. 협상이 급진전되고 있음을 보여 주는 것이다.
이는 현실적으로 아프간 정부가 피랍자 23명이라는 숫자가 갖는 ‘인도주의적 무게’를 무시할 수 없고 이곳에서 의료 건설 활동을 펼쳐온 한국과의 관계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음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김영식 기자 spear@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