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트렌드 생활정보 International edition 매체

[커버스토리]비행기서 내린 후 어느 나라 다녀왔더라???

입력 | 2007-07-27 03:00:00


《‘1년에 116일, 여성들은 추가 12일.’

항공사 승무원들이 한 해에 국내에 머무는 날이다.

나머지 230∼250일가량은 비행기 또는 해외에서 지내야 한다.

아시아든 유럽이든 미국이든 컴퓨터가 ‘점지’해 주는 대로 가서 하루 이틀을 쉰 뒤 돌아와야 한다.

외국을 맘대로 나다니니 좋겠다고? 현실은 잔인하다. 최대 56명 분량의 식사용 카트를

끌고 다니고 8시간 이내 비행에서는 단 일초도 쉬지 않는다.

격무 중에도 ‘솔’ 음정의 톤으로 항상 친절해야 한다. 이들에게 최대의 적은 시차로 인한 건강의 위협이다.

인천국제공항에서 대한항공 승무원 5명이 ‘시차 토크’를 나눴다.

변진욱(38·남) 사무장, 정주연(31) 이현주(28) 대리, 안은미(27) 남희림(25) 씨 등이 참가했다.》


촬영 : 박영대 기자

○ 요통부터 항공성 치매까지 시차병 다양

▽변진욱=항공성 건망증이 있어요. 비행기에서 내리면 갑자기 집 전화번호가 생각나지 않거나 어느 나라를 다녀왔지 싶은 게….

▽안은미=월경이 빨라져요.

▽남희림=건조해서 그런지 비염도 심해져요.

시차로 인한 증상을 묻자 이들은 손까지 들어가며 앞 다퉈 말했다.

▽정주연=요통이요. 무거운 짐을 들어서 그런가?

실제 승무원들은 일을 하느라, 비행기 승객들은 잘못된 자세로 오래 앉아 있느라 요통을 느끼기 쉽다.

▽이현주=배가 빵빵하면 잠이 잘 오잖아요. 그래서 잠자기 전에 간단하게라도 먹는 습관이 생겼어요. 결과요? 역류성 식도염에 걸렸잖아요.

▽정=그래도 기내에서는 잘 안 먹지 않니? 승무원 사이에서는 대대로 내려오는 식사비법 같은 게 있어요. 기내에서는 배부르면 더 피곤하기 때문에 거의 먹지 않는 것이지요.

▽안=외국에 내리면 승무원들끼리 한국 식당으로 몰려가 고기를 왕창 구워 먹어요.

▽남=식당 주인들도 승무원이 오면 알아서 챙겨줘요. 반찬은 3번을 바꿔 주는 게 기본이죠.

▽변=아마 군인보다 더 많이 먹는 사람이 여승무원일걸요?

식사로 잠을 조절하는 것은 의외로 좋은 방법이다. 해외여행 3일 전부터 아침 점심에는 단백질이 풍부한 음식을 먹고 저녁에는 탄수화물을 먹어야 한다. 해외에서도 같은 방식으로 식사하면 시차에 적응하기 한결 쉽다. 단백질은 사람의 신체와 두뇌를 활동적으로 만드는 반면 탄수화물은 졸음을 유발한다고 한다.

승무원뿐만 아니라 승객들도 기내에서는 소식해야 한다. 본전이 생각나 식사를 꼬박꼬박 식사를 다 할 필요는 없다.

▽정=저는 커피를 좋아해서 기내에서도 5, 6잔은 마십니다.

▽변=요즘은 덜하지만 남자 승무원들은 술을 마셔서 시차를 조절하기도 했어요.

커피나 술로 시차 조절을 하는 것은 매우 해로운 방법이다. 둘 다 이뇨작용이 있어서 몸을 수분 부족 상태로 만든다. 술은 알코올이 분해될 때 인체를 각성시켜 잠을 깨운다. 커피와 술 대신 물을 2L 이상 마시자. 기내에서 몸이 부을 때도 물이 최고다.

○ 사랑하는 곳은 방콕, 힘든 곳 미국 동부

▽안=저는 미국 동부 쪽으로 가면 시차 때문에 현지에서는 잠을 못 자요. 그 대신 한국에 와서 잠을 15, 16시간 정도 자요.

▽정=30대가 되고 보니 동남아 야간비행이 너무 힘들어요. 규정상 8시간 이상 비행이면 승무원들도 2시간 정도는 잘 수 있는데 8시간 이내면 조금도 쉴 수 없기 때문이지요.

▽안=그래도 방콕은 너무 좋지 않나요? 5시간 비행에, 저렴한 가격으로 마사지도 받을 수 있고….

사람은 동쪽으로 여행할수록 시차를 더 느낀다. 유럽보다 미국에 갈 때, 미국보다 유럽에서 돌아올 때 시차 부적응을 겪을 우려가 높다.

사람의 생체시계는 딱 24시간이 아니라 25.3시간이기 때문이다. 인체는 일찍 잠드는 것보다 잠을 안 자고 버티는 걸 훨씬 수월하게 여긴다. 미국 로스앤젤레스의 오후 11시는 한국 시간으로 오후 4시지만 영국 런던의 오후 11시는 한국의 오전 7시다. 밤샘 작업 뒤 아침 잠을 청하는 게 벌건 대낮에 잠자리에 드는 것보다 쉽다.

▽이=저는 시차를 느껴본 적이 없어요. 체력이 튼튼해서 그런 모양이에요. 장거리 비행 뒤 한국에서 쉴 때도 친구와 함께 코엑스몰, 남대문, 명동을 휩쓸고 다녀요. 그러다보면 졸릴 시간이 없어요.

▽남=어우, 선배님이 독특하신 거죠.

▽안=저는 임신하려고 보약을 먹고 있어요. 비타민도 꼭 챙겨요.

▽남=홍삼, 여성종합비타민제, 멜라토닌도 갖고 다녀요.

▽정=정말 그러보니 우리 약통 하나씩은 다 갖고 있지 않니? 비타민, 로열젤리, 타이레놀, 소화제….

▽이=약을 챙겨 먹는 게 승무원에게 대대로 내려오는 비법 중 하나죠. 또 있다면, 글쎄 직업의식? 우린 직업이니까 남보다 훨씬 빨리 시차 불일치에 적응하는 것 같아요.

하임숙 기자 arteme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