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들어진 신/리처드 도킨스 지음·이한음 옮김/604쪽·2만5000원·김영사
“바보야, 해법은 ‘테러와의 전쟁’이 아니라 ‘종교와의 전쟁’이야.”
지난해 9월 출간된 뒤 서구 지성 사회에 논란을 몰고 온 이 책의 주장을 이렇게 요약할 수 있다. 저자는 ‘이기적 유전자’(1976년)로 일약 진화생물학계의 스타로 떠오른 뒤 창조론을 비판해 온 리처드 도킨스(66·사진) 영국 옥스퍼드대 교수. 그는 ‘종교적 망상’을 뜻하는 신조어 ‘Relusion(religion+delusion)’이란 우회적 표현을 피하고 ‘신이라는 망상(God Delusion)’이란 직설적 표현을 원제로 해서 “극단적 종교가 문제가 아니라 종교 자체가 문제”라고 포문을 열었다.
그는 ‘무신론 근본주의’라 할 만큼 격렬한 어조로 종교, 특히 일신교 교리의 허구성을 공격하고 인간의 삶에서 종교를 추방해야 평화와 행복이 온다고 역설한다. 이를 위해 진화생물학, 천체물리학, 양자물리학, 지질학과 같은 과학뿐 아니라 논리학과 철학, 역사학, 문학까지 총동원한다.
몇 개를 둘러보자. 신의 존재를 입증했다는 토마스 아퀴나스의 5대 논증 중 4개는 모두 격파됐고, 마지막 남은 1개가 ‘지적설계론’이다. 하지만 이 역시 진화론과 비교할 수 없는 조야한 논리일 뿐이다. 지난해 덴마크 신문에 실린 12컷 풍자만화에 대한 이슬람권의 집단 분노는 진짜 모욕적인 3컷의 만화를 집어넣은 이슬람 지도자들의 조작에 놀아난 것이었다. ‘이슬람은 평화다’라는 주문은 1400년에 이르지만 이슬람 역사에서 평화의 시기는 오직 13년에 불과했다.
미국이 ‘청교도의 나라’로 알려져 있지만 ‘건국의 아버지들’인 벤저민 프랭클린, 토머스 제퍼슨, 제임스 매디슨, 존 애덤스는 종교의 유해성을 신랄하게 비판한 세속주의자들이었다. 미국 보수주의의 이념을 새롭게 벼려낸 공화당의 영웅 배리 골드워터조차도. 그는 “그들(미국 내 종교집단)이 자신들의 도덕적 확신을 보수주의라는 이름하에 모든 미국인들에게 강요하려 한다면, 나는 사사건건 그들과 맞서 싸울 것”이라고 천명했다.
그러나 오늘날 미국은 어떠한가. 아버지 조지 부시 전 대통령은 무신론자를 동등한 시민으로 봐야 하지 않겠느냐는 질문에 “아니요”라고 답했다. 1999년 미국에서 실시한 여론조사에선 후보가 여성, 가톨릭 신자, 유대인, 흑인, 동성애자라는 점만 빼고 나무랄 데 없는 인물일 때 표를 주겠느냐는 여론조사에서 무신론자는 절반 이하의 가장 낮은 지지를 받았다. 저자는 이를 놓고 과거의 인종차별 반대 운동, 페미니즘 운동, 동성애 인권운동처럼 무신론자 인권운동이 필요한 시기라며 지식인부터 자신이 무신론자임을 ‘커밍아웃’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는 무신론적 성격을 은폐해 온 이신론, 범신론, 불가지론을 향해 종교의 위세가 무서워 얼버무리는 짓을 그만두고 과학의 이름으로 종교와의 전쟁에 동참할 것을 촉구한다. 때로 그 비판의 칼날은 실명을 거론한 동료 과학자를 향한다.
저자는 과학과 종교의 영역을 엄격히 구분하려 한 스티븐 제이 굴드 등 과학자들의 이런 태도가 오히려 종교의 월권을 조장한다고 비판한다. 종교인들은 자신들에게 유리한 과학적 연구 결과는 적극 홍보하면서도 반대로 불리한 과학적 결과에 대해선 “과학은 그래서 안 돼”라는 식의 이중 플레이를 일삼는다. 미국뿐만 아니라 영국에서까지 ‘지적설계론’을 교과 과정으로 채택하거나 지구의 나이를 성경의 역사에 뜯어 맞추는 ‘역사의 퇴보’도 발생하고 있다.
그는 또한 독자적 판단 능력이 없는 어린이에게 끔찍한 지옥 이야기를 들려주며 특정 종교를 강요하는 행위를 아동 성추행보다 더 끔찍한 짓이라고 매도한다.
이 책의 내용을 논박하는 것은 쉽다. 디트리히 본회퍼, 파울 틸리히 같은 고차원의 신학자나 테레사 수녀 같은 고결한 실천가들을 외면하고 물의를 일삼는 종교인들만 거론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저자의 말처럼 그런 종교인들은 희소하지만 대중적 종교인들은 위험한 발언을 서슴지 않는다. 교황 베네딕토 16세조차 그러하지 않았는가.
진지한 종교인이라면 “왜 종교만 특수한 대접을 받아야 하는가”라는 이 책의 신랄한 비판을 겸허히 껴안을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이야말로 종교가 과학과 다른 존재 이유를 입증할 수 있는 길이 아닐까.
한편 저자는 과학이 ‘어떻게’를 다룬다면 종교는 ‘왜’를 다룬다는 이분법에 반대한다. 그러나 이 책이야말로 계몽주의에 의해 고사 위기에 몰렸던 종교가 부활하는 현상에 대해 ‘어떻게’는 보여 주지만 ‘왜’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빠져 있다. 과학이 종교로부터 배워야 할 것은 바로 그런 자기성찰 능력이 아닐까.
권재현 기자 confett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