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육장 쪽으로/편혜영 지음/256쪽·9500원·문학동네
첫 소설집 ‘아오이 가든’에서 시체와 악취가 가득한 세계를 내놨던 편혜영(36) 씨. 그 악몽 같은 공간이 현대 일상의 상징으로 읽혀져 주목받았던 작가는 새 소설집에서 180도 변신한다. 편 씨가 선보인 8편의 단편은 ‘너무나 사실적’이다. 일상에 대한 담담한 기술은 그러나, 우리가 사는 세상이 얼마나 참혹한 것인지를 더욱 생생하게 전달한다. 평론가 신형철 씨의 말대로 “이제 ‘악몽의 일상화’가 아니라 ‘일상의 악몽화’를 겨냥하는 것”이다.
표제작 ‘사육장 쪽으로’는 “전원주택이야말로 도시인의 꿈”이라면서 호기롭게 도시 외곽 전원주택으로 옮겨온 남자의 이야기다. 그러나 풍요로운 꿈같았던 인생은 하루아침에 ‘파산’이라는 비극에 맞닥뜨린다. 언제 집이 압류될지 모르는 처지에서 들려오는 것은 사육장의 개 짖는 소리다.
개 짖는 소리처럼 도시의 소시민이 떨쳐낼 수 없는 불안의 상징은 다른 소설들에서도 발견된다. 가령 ‘소풍’의 안개가 그렇다. 피로한 도시생활에서 벗어나고자 여행을 떠난 연인. 그러나 그들이 얻는 것은 휴식이 아니라 파국이다. 도시의 긴장 속에서 겨우 유지되던 관계가 낯선 곳에서 깨지기까지 두 사람을 지겹게 따라붙는 것은 안개다.
동물원에서 탈출한 늑대를 잡기 위해 뛰어다니다가 결국 서로를 향해 총을 쏘는 도시 사람들(‘동물원의 탄생’)이나 지하철에서 업무 서류를 분실하면서 자신의 삶 자체를 점차 잃어버리는 회사원(‘분실물’) 등 편혜영 씨가 묘사하는 평범한 도시인의 악몽은 끔찍하다. 그것은 평온한 일상 속에서도 갖고 있는 모든 게 한순간에 무너질 수 있다는, 소시민 독자 모두가 공유할 공포의 감정을 일깨운다.
김지영 기자 kimj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