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가경영학’이라는 이색 전공으로 인기 강사로 떠오른 김정운 명지대 교수는 13년간 독일에서 유학생활을 했다. 그는 2년에 한 번씩 체류비자를 갱신할 때마다 새벽부터 독일 외국인청 앞에 몇 시간이고 줄을 서야 했다. 면담이 시작되면 독일 관리들은 그를 불법 체류자로 전제하고 질문을 던졌다. 서류 처리에 몇 시간을 더 기다린 그가 비자를 손에 쥐는 시간은 늘 해질 무렵이었다. 그는 설움에 매번 눈시울을 붉혔다고 한다. 하지만 일본인 유학생들은 줄도 서지 않고 곧바로 들어가 몇 분 만에 여권에 도장을 받아 나왔다. 그의 저서 ‘일본 열광’에 나와 있는 체험담이다.
▷외국을 여행하거나 체류했던 사람 가운데 이런 언짢은 기억을 갖고 있는 사람이 김 교수뿐일까. 우리의 경제적 위상이 나아지면서 세계 어디를 가도 출입국 심사 때 푸대접을 받지는 않지만 미국 비자를 받을 때는 ‘짜증 나는 예외’다. 번거로운 절차에다 시간이 만만치 않게 소요돼 “미국 비자가 반미(反美)감정을 부추긴다”는 말까지 나온다.
▷해결책은 미국이 시행 중인 비자면제프로그램에 한국을 포함시키는 것이다. 미국에 90일 이내로 체류할 경우 비자가 없어도 되는 이 프로그램에는 아시아에서 일본 싱가포르 등 5개국이, 세계에서 모두 27개국이 가입돼 있다. 한국은 충분한 자격이 있다. 미국을 방문하는 한국인 수는 세계에서 다섯 번째로 많다. 한국인 여행객들은 해마다 20억 달러 이상을 미국에서 쓴다. 비자가 면제되면 한 해 90만 명에 이르는 한국인 방문객이 두 배 정도 늘어날 것이라고 한다. 한국에 대한 비자면제는 미국에 더 이익이 되는 셈이다.
▷내년 7, 8월이 되면 한국도 이 프로그램에 포함돼 비자면제 국가가 된다는 소식이다. 한미관계를 불편하게 했던 걸림돌 하나가 치워지는 느낌이다. 그동안 비자를 받기 위해 미국대사관 옆에 늘어선 긴 행렬은 곁에서 보는 것만으로도 미국행을 주저하게 했다. 미국 내부에서도 한국이 조속히 비자면제 국가가 되어야 한다는 여론이 높았다고 한다. 빈번한 왕래와 교류는 서로를 이해하는 지름길이다.
홍찬식 논설위원 chansi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