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정부와 산업계가 자동차의 각종 전자제어장치에 공통으로 사용되는 운영소프트웨어(OS)를 개발하는 데 발 벗고 나섰다. 마이크로소프트가 ‘윈도’로 세계 컴퓨터 소프트웨어 시장을 석권한 신화를 자동차에서 재현하겠다는 야심이다.
29일 요미우리신문 등에 따르면 일본 경제산업성은 도요타 혼다 닛산 등 10개 자동차 업체와 공동으로 자동차용 OS를 개발하기로 했다. 2009년까지 시제품을 만들어 5∼10년 안에 실용화한다는 목표다. 경제산업성은 이를 위해 내년부터 정부 예산까지 편성하기로 했다.
일본이 자동차용 OS에 눈독을 들이는 이유는 자동차의 연료소비효율 향상이나 안전도 향상 등을 위해 전자제어장치 사용이 늘어나는, 이른바 ‘자동차의 정보기술(IT)화’가 급진전되고 있기 때문이다.
예컨대 자동차 1대에 사용되는 전자제어장치의 수는 1980년대만 해도 5개 정도에 불과했으나 지금은 30개를 넘어선다. 렉서스의 최고급 차종인 ‘LS460’의 경우는 그 수가 100여 개에 이른다. 이런 현상은 하이브리드 자동차의 보급이 늘어나면 더 빠른 속도로 진행될 것으로 전망된다.
일반 승용차 1대의 원가에서 전자 부품이 차지하는 비중은 20%가량이지만 하이브리드 자동차는 절반에 육박한다. 일부 차종은 전자제어장치용 소프트웨어를 개발하는 데만 500여 명의 인력이 2년 이상 매달려야 할 정도다.
공통된 OS가 있으면 개발기간이 크게 단축되고 개발비용도 많이 줄어들 것으로 일본 정부와 자동차 업계는 보고 있다.
유럽의 자동차업체들은 이런 사실을 일찌감치 인식하고 일본 자동차업계보다 먼저 OS를 개발해 왔다.
독일의 자동차부품업체인 보슈는 세계 자동차용 OS시장의 70%를 장악하고 있고 BMW와 다임러크라이슬러 등은 2008년경 시제품을 내놓을 예정이다.
도요타 등 자동차회사들도 개별적으로는 이미 개발 작업을 하고 있지만 ‘관민(官民) 총동원 체제’를 통해 유럽세를 단숨에 따라잡겠다는 것이 일본 정부의 복안이다.
일본은 지난해 미국을 제치고 자동차 생산 1위국으로 올라섰다. 또한 도요타자동차는 올해 1∼6월 자동차 생산·판매에서 제너럴 모터스(GM)를 추월했다.
이런 기세를 보면 자동차용 ‘윈도’로 세계 시장을 휘어잡겠다는 일본의 야심을 허황된 꿈이라고 단정하기 어렵다는 생각도 든다.
천광암 도쿄 특파원 ia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