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한일 월드컵에서 4강 신화를 이룬 거스 히딩크 감독 이후 한국 축구대표팀 사령탑이 네 번째 바뀐다. 지난해 독일 월드컵 때 한시적으로 대표팀을 맡은 딕 아드보카트 감독을 빼면 3명이 모두 임기를 채우지 못했다.
“한국 축구의 실력이 원래 이 수준인데 우리가 너무 호들갑을 떠는 게 아닌가.”
한 축구인은 한국이 2007 아시안컵 6경기에서 3골만 뽑아내는 졸전 끝에 3위를 한 뒤 핌 베어벡 감독이 사퇴하는 등 대표팀에 대한 비난이 높아지자 이렇게 말했다. 2002년 운 좋게 4강을 했지만 한국은 언제나 월드컵 본선 진출에 목을 매고 아시아에서도 정상에 오르기 힘든 전력인데 이런 현실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또 한 축구인은 “4강 이후 변한 게 있다면 팬들의 눈높이와 선수들의 몸값만 높아졌다”고 말했다. 한마디로 현실과 이상의 차이가 너무 커 이런 현상이 계속 반복된다는 것이다.
실제로 팬들은 2002년에 월드컵 4강을 지켜봤고 이후 박지성(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이영표(토트넘 홋스퍼) 등이 유럽에 진출하며 네덜란드와 잉글랜드, 스페인 등 유럽 프로축구에 익숙해졌다. 당연히 현 대표팀도 그 눈높이에서 바라보고 있다. 상대적으로 수준이 떨어지는 K리그는 제쳐두고 대표팀에만 신경을 쓰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런데 한국 선수들의 실력은 어떤가. 대표팀에 모인 선수들조차 패스는 자주 끊기고 볼 트래핑은 엉망이고 공격과 수비 때 느슨하게 움직이는 등 형편없다는 게 이번 아시안컵에서 드러났다.
한 축구 해설가는 “2002년 4강 프리미엄으로 선수 몸값이 갑자기 3∼5배 뛴 ‘몸값 거품’이 한국 축구가 흔들리는 데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말했다. 현재 국내 프로선수의 연봉은 일본은 물론이고 유럽의 포르투갈이나 네덜란드보다 높다. 실력보다 높은 대우를 받는 반면 투지는 떨어져 ‘고추장 축구’가 사라졌다는 비난도 일고 있다.
전쟁에서 지면 장수가 책임을 져야 한다. 하지만 이런 현실은 직시하지 않고 드러나는 결과만 놓고 감독에게만 책임을 전가한다면 한국 축구는 영원히 제자리걸음만 할 것이다.
양종구 기자 yjong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