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어지지 않지만, 탈레반도 한때는 국민의 지지를 받던 정권이었다. 1979년부터 10년을 괴롭히던 소련군이 쫓겨 간 뒤 아프가니스탄은 무능한 정권의 부패와 무장세력들 간의 내전으로 극심한 혼돈과 도탄에 빠져 있었다. 1996년 수도를 점령한 탈레반이 부패 척결과 질서 확립에 나섰을 때, 카불 시민들은 탈레반의 발아래 꽃을 던졌다.
“나만 옳다”는 근본주의 독재
물론 그 지지는 오래가지 못했다. ‘해방군’으로 집권했다 독재로 망하는 역사는 드물지 않다. 대개는 자신들이 몰아낸 과거 세력처럼 부패하거나 거꾸로 지나치게 원론적, 개혁적이어서 국민의 신망을 잃는 경우다.
필리핀의 ‘피플 파워’로 쫓겨난 페르디난도 마르코스가 전자였다면 탈레반 정권은 후자였다. 이슬람 근본주의에 기반한 국가를 세운다며 ‘미덕 전파와 악덕 예방부(部)’까지 두어 제 국민에 대해 공공연한 테러와 학살을 자행했다. 탈레반 정권이 2001년 9·11테러를 일으킨 오사마 빈 라덴을 보호하고 있다가 미국의 침공을 받아 무너졌을 때 아프간엔 오히려 희망이 솟았을 정도다.
9·11테러가 터진 지 6년이 다 돼 가는 지금, 그때 실각한 탈레반이 되살아나 우리 국민을 인질로 잡고 있다. 1980년대 탈레반과 함께 소련에 맞섰던 오사마 빈 라덴은 90년대 후반 국가 없는 테러 조직 알 카에다를 일으켰고, 탈레반은 아프간을 접수했다는 점에서 그들은 샴쌍둥이나 다름없다.
왕년의 아프간 집권 세력에다 파키스탄 접경 지역에 똬리를 튼 알 카에다, 아편 판매 마피아까지 합친 ‘네오 탈레반’은 새 정부의 부패와 무능을 틈타 날로 세력을 키웠다. 그리고 지구상의 모든 악행이 미국이 주도하는 세계화에 있다며 반미, 반세계화 테러를 주도하고 있다.
알 카에다나 이들이나 목표는 같다. 이슬람 근본주의 신정(神政)국가를 세워 율법의 공포 정치를 반복하는 것이다. 그래서 아프간처럼 국민의 평균수명을 43세에 묶어 놓고, 다섯 명 중 한 명은 다섯 살도 못 살다 죽게 만들고, 어른 70%가 문맹에 평균 소득 200달러인 세계를 만들고 싶은 모양이다.
온 국민을 애타게 만드는 이번 인질 사태는 아프간 사람들을 도우러 갔던 우리 젊은이들의 잘못이 아니고 교회 탓도, 미국 책임도 아니다. 이슬람 역시 주류는 민주주의의 원칙을 받아들인 지 오래다. 탈레반과 알 카에다의 종교적 스승이었던 사이드 쿠트브는 1923년 터키의 세속화 개혁과 서구 문명에 격분해 이슬람 근본주의를 설파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 세속화 개혁을 이어받은 터키의 인민공화당은 과거의 국수주의 원칙만을 고집하는 수구 꼴통당이 됐고, 끊임없이 세상 변화에 적응하며 체질을 개선해 온 이슬람이 오히려 온건하다.
지난달 22일 치러진 총선에서 유권자들은 시장경제와 자유민주주의를 착실히 다져 온 친(親)이슬람계 정의개발당의 손을 들어 줬다. 무슬림도 나라와 경제 발전, 세계화에 앞장설 수 있고 과거의 개혁 세력이 나라를 거꾸로 이끌 수도 있음을 간파한 터키 국민은 현명했다.
反세계화 테러에 희생될 순 없다
우리에게도 ‘탈레반’을 자처하는 세력이 있었다. 장난인지 실수인지 또 지금도 당당히 탈레반을 입에 올릴 수 있을지 알 수 없어도, 한때 그들은 “탈레반은 다시 나서야 한다”며 “또박또박 악랄하게 전진하자”고 외쳐 댄 개혁 근본주의자들이었다.
유토피아를 내걸고 자신만의 도덕과 율법을 고집하는 근본주의는 공산주의나 파시즘 같은 전체주의와 다를 바 없다. 자신들은 언제나 옳기 때문에 어떤 수단도 정당하다고 믿는다는 점에서 비(非)자유적, 반(反)민주적이다.
죄 없는 우리 젊은이들은 지금 종교의 이름으로 폭력을 일삼던 이슬람 근본주의 세력에 붙들려 있다. 문제의 근원은 테러 집단의 분노를 촉발시킨 부패하고 무능한 정부에 있고, 이를 치유할 해독제 중 하나가 자유민주주의다. ‘테러와의 전쟁’은 남의 일이 아니었다.
김순덕 편집국 부국장 yur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