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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이야기]避坑落井

입력 | 2007-08-03 03:01:00


준비는 항상 필요하다. 有備無患(유비무환)이라는 말은 이러한 자세를 가질 것을 요구한다. 그러나 항상 준비하고 대비하는 자세로 살아간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逆境(역경)의 시절에는 항상 준비하고 대비하지만 順境(순경)의 시절이 오면 이러한 마음은 곧잘 해이해진다. 그래서 역경은 이기기 쉬워도 순경은 이기기 어렵다는 말이 있는지도 모른다. 역경은 우리에게 긴장을 주며 항상 대비하는 자세를 갖게 한다. 그러나 순경은 이러한 경계심을 풀어준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무서운 것은 역경이 아니라 순경이다.

‘避坑落井(피갱낙정)’이라는 말이 있다. ‘避’는 ‘피하다’라는 뜻이다. ‘避暑(피서)’는 ‘더위를 피하다’라는 말이다. ‘暑’는 ‘日’, 즉 ‘해’의 아래쪽에 사람(者)이 있는 것을 나타내는 한자이다. 그러므로 ‘덥다, 더위’라는 뜻을 갖는다. ‘避靜(피정)’은 ‘세상을 피하여 고요하게 지내다’라는 말이다. ‘靜’은 ‘고요하다’라는 뜻이다. 이는 천주교에서 사용하는 말로, 일상생활에서 벗어나 조용하게 지내며 성당이나 수도원 같은 곳에서 묵상이나 기도를 통하여 자신을 살피는 것을 나타낸다. ‘坑’은 ‘구덩이’라는 뜻이다. ‘坑道(갱도)’는 광산에서 사용하는 말로, 지하로 내려가는 길을 나타낸다. 즉, ‘구덩이에 난 길’이라는 뜻이다. ‘坑木(갱목)’은 ‘구덩이가 무너지지 않도록 받쳐주는 나무’이다. ‘落’은 ‘떨어지다’라는 뜻이다. ‘落果(낙과)’는 ‘나무에서 떨어진 과실’이라는 말이고 ‘落榜(낙방)’은 ‘과거시험에 떨어지다’라는 말이다. ‘榜’은 ‘시험의 합격자를 공고하는 글’을 말한다. ‘井’은 ‘우물’이라는 뜻이다. 이상의 의미를 정리하면 ‘避坑落井’은 ‘구덩이를 피해 가다가 우물에 빠진다’라는 말이 된다. 즉, 한 가지 위험을 피했으나 더 큰 피해를 본다는 말이다. 한 가지 위기를 넘겼다고 자만해서는 안 된다.

‘禍不單行(화불단행)’-화는 홀로 오지 않는다고 옛사람은 말하고 있다.

허성도 서울대 교수·중문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