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 정치를 만나다/박홍규 지음/296쪽·1만2000원·이다미디어
이 책은 정치적 삶을 살았거나 정치적 색채가 짙은 작품을 선보인 서양 예술가 8명의 이야기다. 예술가이면서 외교관을 지낸 루벤스, 독일 나치를 풍자한 채플린, 공산당에 입당한 피카소 같은 예술가들이 등장한다.
예술은 정치적이어야 한다는 사람도 있고 예술과 정치는 무관해야 한다는 사람도 있다. 결국 이런 책은 저자에 따라 달라지기 마련이다.
저자에게 눈길이 가는 것도 이 때문이다. 저자는 노동법을 전공한 법대(영남대) 교수지만 전공을 넘나드는 저술로 유명하다. 예술가를 소개한 평전도 많이 냈다. 그 다양한 책들에 일관성이 있다. 권력에 저항하는 인권 평등 자유에 대한 열망이다.
이 책도 예술은 정치적이어야 하며, 예술의 정치성이란 전체주의 민족주의 같은 정치권력의 종속에서 벗어나 참된 인간 해방을 추구하는 참된 예술이라는 바탕이 깔려 있다. 따라서 예술가 8명에 대한 이야기엔 저자의 가치 판단이 많이 들어가 있다.
바그너에 대한 평가는 적대적이다. 저자에 따르면 바그너는 예술을 정치적 선전으로 타락시킨 앞잡이다. 독일은 전사의 민족이라고 떠들어댔으며 독일이 점령한 프랑스 파리 시민을 조롱하는 곡을 만들었다. 노골적인 반유대주의로 유대인 작곡가 멘델스존의 음악을 지휘할 땐 흰 장갑을 끼었다가 곡이 끝나면 버렸다. 저자는 예술이 정치를 만나 어떻게 일그러지고 불행해지는지 바그너를 보면 알 수 있다고 말한다.
반면 지극히 정치적이었지만 자유와 평등의 ‘이매진’을 노래한 존 레넌을 바라보는 저자의 시선은 따뜻하다. 레넌은 사유재산제나 종교 등 모든 권력을 부정했다. 이데올로기와 원리주의에 빠져 ‘개인’에 무관심했던 좌익도 비판했다.
빙 둘러 가는 답답함은 있지만 예술가를 본격 거론하기 전에 밟아가는 배경 이야기도 재미있다. 바그너를 말하기 전엔 1600년 전후 이탈리아의 궁중 오락으로 탄생해 절대 왕정의 권력 과시 수단이었던 오페라 이야기가 먼저 양념을 뿌린다. 당시 왕족의 관람 자리가 공연장 구석의 폐쇄 공간이었던 것은 오페라가 관람예술이 아니라 축전의 사교 장소였기 때문이며, 이로 인해 공연을 가장 잘 볼 수 있는 아래쪽은 평민들의 차지가 됐다는 것 등이다.
저자가 박홍규 교수라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예술의 가치를 예술가의 정치적 삶으로 어디까지 평가할 수 있는가 하는 점은 의문으로 남는다. 바그너의 오페라가 오늘날까지 살아 있는 것은 예술적 가치를 인정받았기 때문일 텐데, 작가의 정치적 삶으로 인해 작품 자체를 폄훼하는 것은 지나친 게 아닐까 싶다. 정치와 예술의 관계를 다시 한번 곱씹게 하는 책이다.
윤완준 기자 zeitu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