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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직접 ‘취재 가이드라인’ 정하나

입력 | 2007-08-08 03:03:00

국정홍보처가 마련한 ‘취재 지원에 관한 기준안’에 대해 언론계와 학계, 법조계, 정치권에서 과거 군사정권의 ‘보도지침’처럼 언론을 통제하려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정부는 취재지원 기준안 마련에 앞서 5월 22일 기사송고실 및 브리핑룸 통폐합 등을 골자로 하는 ‘취재지원시스템 선진화 방안’을 발표했다. 동아일보 자료 사진


국정홍보처가 만든 ‘취재 지원에 관한 기준안(총리 훈령)’에 대한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이 기준안에 따르면 홍보처 차장과 각 부처의 정책홍보관리관들로 구성된 ‘취재지원 운영협의회’는 비보도와 엠바고(보도 유예) 사안을 정하고 이를 어긴 언론사와 기자를 직접 제재하는 권한까지 갖는다. 정부가 정한 비보도와 엠바고를 어긴 언론사와 기자에 대해서는 일정 기간 보도자료를 제공하지 않거나 인터뷰를 거부하는 등 불이익 조치를 준다는 것.

▽앞뒤가 뒤바뀐 정부안=김창호 홍보처장은 7일 브리핑에서 “많은 나라가 엠바고 제도를 유지하고 있고, 이를 어겼을 경우 해당 언론사에 제재를 한다”며 기준안의 정당성을 주장했다.

하지만 이는 앞뒤가 바뀐 주장이다.

대부분의 국가에서 비보도나 엠바고를 최종 결정하는 주체는 정부가 아니라 언론이다. 비보도나 엠바고를 지키지 않은 기자에 대한 제재는 기자들이 결정하거나 최소한 기자들의 동의를 거친다. 정부는 단지 비보도나 엠바고를 언론사와 기자들에게 ‘요청’할 수 있을 뿐이다. 이는 행정 편의주의에 빠지기 쉬운 정부를 견제하고 국민의 알 권리를 충족시키는 것이 언론의 역할이기 때문이다.

현재 우리나라에서도 어린이 유괴 수사나 최근 발생한 아프가니스탄 피랍사태 같은 국민의 안전이나 국익 등과 관련해 공익적 목적이 있을 경우 정부가 요청하면 기자들이 자율적으로 협의해 사안별로 비보도나 엠바고를 정하고 있다. 비보도나 엠바고를 어긴 언론사에 대해서는 기자들이 자체적으로 일정 수준의 제재를 하고 있다.

▽“유례가 없는 언론 제재 명문화”=얼핏 보면 홍보처가 만든 기준안은 이런 관행을 ‘명문화’한 것으로 볼 수도 있다. 하지만 정부가 엠바고 내용을 결정하고 제재 권한까지 행사할 경우 취재 자유가 제한된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유일상 건국대 언론홍보대학원장은 “언론 스스로 해야 될 일을 정부가 대신 해주겠다는 것은 언론의 자율성을 뺏는 것이고 언론이 정부의 스피커가 되길 원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재진 한양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엠바고 파기에 대한 제재를 명문화하는 것은 유례가 없으며 독재시대의 언론에 대한 대응과 방식만 다를 뿐 결과는 비슷하다”고 말했다.

법적으로도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많다. 공무원의 업무상 규칙 등을 정하는 총리 훈령으로 헌법상 보장된 국민의 알 권리와 관계되는 사안을 규정하는 것은 위헌 소지가 있다는 것.

하창우 서울지방변호사회 회장은 “정보 제공자의 역할은 정보를 제공하는 데서 끝나는 것이고 보도 시점은 언론이 자율적으로 정할 문제”라며 “일개 훈령으로 헌법적 가치인 언론의 자유에 해당하는 보도의 권리를 제한하겠다는 것은 위헌 소지가 있다”고 말했다.

강경근 숭실대 법학과 교수는 “(기준안은) 내용면에서 국민의 알 권리와 취재의 자유라는 헌법적 가치를 본질적으로 침해하기 때문에 훈령으로 정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브리핑 참석 의무화도 문제=홍보처는 정부 브리핑룸 출입증을 받은 기자가 최소한 주 1회 이상 브리핑에 참석하지 않을 경우 출입증을 회수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정부는 주요 언론사 기자들이 기자실을 폐쇄적으로 이용한다는 이유로 모든 언론사에 개방하는 브리핑룸을 도입했다. 그래 놓고 이제 와서 출입증 발급도 제한하겠다는 것은 현 정부 스스로 내세운 개방형 브리핑제의 취지에도 맞지 않는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충분한 협의도 안 거쳐=홍보처는 그동안 기준안을 ‘대외주의’로 분류해 외부 공개를 막아 왔다. 홍보처는 이날 언론을 통해 기준안 내용이 공개되자 뒤늦게 “원래 공개하려고 했었고 언론단체들과 충분히 협의도 거쳤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홍보처가 협의했다고 밝힌 대상은 한국방송프로듀서연합회, 인터넷신문협회 등인 것으로 밝혀졌다.

홍보처는 한국기자협회에 7월 기준안을 건넸을 뿐 이후 아무런 협의 과정을 거치지 않았다.

기자협회는 이 문제와 관련해 13일 운영위원회를 열고 대응 방안을 논의할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다.

길진균 기자 leon@donga.com

서정보 기자 suhcho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