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대인과 러시아인을 ‘인간 이하(Unter-menschen)’로 선전했던 독일 제3제국의 총통 아돌프 히틀러가 아르투르 슈나벨 같은 유대인 음악가의 연주를 즐기고 차이콥스키 같은 러시아 작곡가의 음악도 좋아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이 같은 사실은 나치 장군들을 심문했던 옛 소련 정보요원 레브 베시멘스키가 최근 사망한 뒤 그의 다락방에서 히틀러의 음반 약 100장이 발견되면서 공개됐다. 다락방에서는 베시멘스키가 이 음반들에 대해 쓴 메모도 함께 발견됐다.
독일 주간 슈피겔에 따르면 베시멘스키 는 이 음반들을 1945년 5월 독일 베를린의 파괴된 총통 본부에서 찾아냈다. 그는 상부에 밝히지 않고 히틀러의 소장품을 획득한 사실이 드러날 것이 염려돼 생전에 이를 공개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놀라운 것은 히틀러가 들었던 음반 중에 폴란드의 유대인 바이올린 연주가 브로니슬라프 후버만이 연주한 차이콥스키 바이올린 협주곡과 오스트리아의 유대인 피아니스트 아르투르 슈나벨이 연주한 모차르트의 피아노 소나타 8번이 들어 있었다는 것.
히틀러는 후버만이 1936년 오늘날 이스라엘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전신인 ‘팔레스타인 오케스트라’를 창립한 사실과 나치가 슈나벨의 어머니를 살해한 사실을 알고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히틀러는 그의 저서 ‘나의 투쟁’에 “예술의 두 여왕인 건축과 음악은 유대인에게서 어떤 독창적인 것도 얻지 못했다”고 쓴 바 있다.
히틀러가 약 100장의 음반 컬렉션 중에 특히 어떤 음악을 좋아했는지는 분명하지 않지만 후버만과 슈나벨 등의 음반은 자주 들은 듯 흠이 많이 나 있었다고 이 잡지는 전했다.
파리=송평인 특파원 pis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