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여자핸드볼 대표팀 선수들이 7일 서울 노원구 공릉동 태릉선수촌에서 제자리뛰기를 하며 몸을 풀고 있다. 2004년 그리스 아테네 올림픽 결승에서 덴마크에 연장 접전 끝에 36-38로 아쉽게 져 은메달에 그친 여자 핸드볼 대표팀은 2008 베이징 올림픽 금메달을 향해 본격적인 담금질에 돌입했다. 이훈구 기자
아무도 그들을 패자라 부르지 않았다. 그들은 지고도 박수를 받았다.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던 마지막 승부가 끝나자 그들은 마침내 목을 놓고 실컷 울었다. 경기에 진 게 서러워서가 아니었다. 그리고 한 맺힌 말을 뱉어냈다. “우리가 진 것은 (여러분의) 무관심 때문이었다”고. 이 말은 메아리가 되어 온 국민의 가슴 속에 퍼졌다. 거구의 유럽 선수와 열악한 환경이라는 이중의 적과 싸웠던 그들의 이야기는 영화로까지 만들어지게 됐다. 그들은 바로 한국 여자핸드볼 대표팀 선수.
2004년 8월 29일 그리스 아테네 헬레니코 인도어 아레나. 클럽 팀만 1000여 개에 1만여 명의 등록 선수를 보유한 덴마크를 상대로 실업팀 4개, 선수 100여 명에 불과한 한국이 맞붙은 아테네 올림픽 결승전. 전후반과 2차 연장전을 치르고도 승부는 나지 않았다. 링거를 맞아가며 지옥훈련과 고된 일정을 견뎌냈던 ‘아줌마 부대’의 선전은 도저히 믿기지 않는 것이었다. 마지막 승부던지기에서 안타까운 패배를 당할 때까지 80분간 펼쳤던 경기는 말 그대로 사투였다.
많은 사람들이 그들의 투지를 칭찬할 때 임영철 감독은 “우리가 진 것은 덴마크 국민의 열렬한 성원 때문이었다. 올림픽만 끝나면 핸드볼은 잊어버리고 마는 무관심이 이제는 되풀이되지 않았으면 좋겠다”며 눈물을 흘렸다.
그로부터 3년 후. 그들이 다시 뛴다. 7일 서울 노원구 태릉선수촌 오륜관. 임영철 감독은 하염없이 내리는 장맛비 속에 오랫동안 침묵에 잠겨 있었다. 25일부터 카자흐스탄에서 열리는 2008년 베이징 올림픽 예선전을 앞두고 작전을 구상 중이었다.
임 감독은 2년간 대표팀을 떠나 있다 올해 5월 복귀했다. 그는 “아테네 올림픽 이후 너무 힘들어 쉬고 싶었다. 그런데 베이징 올림픽을 1년 앞두고 많은 분들이 다시 추천을 해주셔서 복귀했다. 부담이 크다”고 말했다.
그에게 주변 환경은 어떻게 달라졌을까. “첫째는 핸드볼 팬 카페가 생겼다는 점입니다. 팀별로 선수들을 응원하는 카페도 생겼어요. 효명건설 등 기업에서 핸드볼 팀을 창단하는 등 변화가 있었지요. 관중도 조금 늘어났고요.”
아테네 올림픽에 출전했던 오영란은 어느 덧 35세의 노장이 됐다. 골키퍼인 그는 후배들을 이끌며 이번 올림픽 예선에 다시 한번 참가한다. 그는 “사실 눈에 띄게 운동 여건이 좋아지지는 않았다”면서도 “주위 사람들의 관심이 늘어난 건 느끼고 있다”고 말했다.
핸드볼은 여전히 비인기 종목이다. 그러나 서서히 변해 가려는 조짐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이 그나마 다행이다. 오랜 시간 동안 이들이 흘린 땀의 씨앗이 싹을 틔운 것이다.
한국 여자핸드볼 대표팀은 올림픽 예선전에서 1위를 차지해 본선 티켓을 따는 것이 당면 목표이다. 현 대표팀에는 2004년 대표 선수 중 4명만 포함돼 있다. 허순영(덴마크 오르후스) 등 당시 멤버의 대부분은 외국에서 활동하고 있다. 이에 임 감독은 “곧 2004년 멤버들을 다시 불러들일 것이다. 급격한 세대교체는 없다”고 말했다.
금메달보다 값진 은메달의 주역들이 베이징 올림픽에선 어떤 드라마를 연출할까.
이원홍 기자 bluesk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