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는 끝내 밝혀지지 않으리라고 판단되는 일이 있다. 영원한 비밀이라는 말은 그래서 생겨난다. 그러나 대부분의 일에는 端緖(단서)가 있다. 端은 끝이라는 뜻이고 緖는 실마리, 끄트머리의 실이라는 말이다. 실패를 감고 나면 제일 끝에 남는 짧은 부분의 실이 바로 端緖이다.
실 끝을 잡고 조심스럽게 풀어 가면 결국 실패에 감긴 실이 모두 풀린다. 그러므로 사건의 端緖라고 할 때의 端緖는 사건을 풀어갈 수 있는 작은 실마리라는 말이 된다. 세상일은 이와 같이 사소한 단서만 있으면 결국 모든 것이 드러난다. 영원히 감출 수 있는 일은 없다. 사소한 것까지 모두 감출 수는 없기 때문이다.
蛛絲馬迹(주사마적)이라는 말이 있다. 蛛는 거미라는 뜻이다. 朱는 木에 어떤 흔적을 가한 글자 모양인데 이 흔적은 나무에 걸려 있는 붉은 천 조각을 나타낸다. 예를 들면 중국에서는 단오절에 붉은 천을 나무에 두르는 데 朱는 바로 이러한 천의 색깔을 표시한다. 그러므로 (충,훼)(벌레 충)과 朱가 만난 蛛는 나무에 걸려 있는 벌레, 즉 거미라는 의미를 갖는다. 絲는 실, 가는 줄을 뜻한다. 여기에서는 거미줄을 나타낸다. 迹은 자취, 흔적이라는 뜻이다. 痕迹(흔적)은 자국이라는 말이다. 痕도 자국, 자취라는 뜻이다.
이상의 의미를 정리하면 蛛絲馬迹은 거미줄과 말의 흔적이라는 말이 된다. 거미줄을 따라가면 결국 거미가 있는 곳을 알게 되고, 말이 달린 흔적을 따라가면 결국 말이 있는 곳을 알게 됨을 나타낸다. 이처럼 보이지 않던 거미도 가느다란 거미줄을 따라가면 어디 있는지가 밝혀지고, 전혀 보이지 않던 말도 발자국을 따라가면 말의 존재를 확인할 수 있다. 세상일이 모두 이렇게 사소한 흔적만 있으면 밝혀진다. 세상을 속이려는 행동이나 의도는 성공할 수 없다.
허성도 서울대 교수·중문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