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술에서 제시문에 대한 이해력은 기본이다. 게다가 대학들은 제시문 간의 연관성이나 인과관계와 함께 그 속에 담긴 문제의식을 집어내는 비판적이고 창의적인 사고력을 요구하고 있다. 듣기만 해도 마음을 짓누르는 이 능력들을 어떻게 기를 수 있을까? 소설 읽기도 그 방법 중 하나다.
소설이란 기본적으로 살아가는 이야기다. 고민 없이 사는 사람이 없듯, 잘 먹고 잘 살다 잘 죽었다는 소설은 없다. 다시 말해 소설 속의 수많은 문제와 갈등들은 우리가 일상의 삶 속에서 맞닥뜨리고 있는 쟁점이자 현실에서 해결하지 않으면 안 될 논제다. 소설에 내재한 이런저런 갈등을 이해하고 풀어 나가는 일이 결국엔 문제를 인식하고 대안을 마련하는 논술의 과정과 다르지 않다.
겨우 5편이 전할 뿐이지만 최초의 한문소설 ‘금오신화(金鰲新話)’도 독자에게 수많은 질문을 던진다. ‘남염부주지’에서 염라국왕에게 왕위를 물려받을 정도로 인정을 받은 박생은 왜 과거를 볼 때마다 떨어졌는지? 용궁에 초대를 받은 ‘용궁부연록’의 한생은 왜 속세의 명예나 이익을 뒤로하고 산에 들어갔는지? 이를 통해 전쟁과 살인, 명분이 없는 정권 등 작품과 현실의 상관관계를 익혀 볼 수 있다.
마음속에 품은 의문점을 펼쳐내고 구체화할수록 우리의 사고력은 깊어지고 넓어지게 마련이다. ‘만복사저포기’의 양생이나 ‘이생규장전’의 이생이 귀신과의 이룰 수 없는 사랑을 포기하지 않는 이유를 작가의 삶과 연결시켜 보는 것은 어떨까? 그러면 귀신 저승 꿈 용궁 등 비현실적 세계가 사실은 접을 수 없는 김시습의 삶과 의지를 역설적으로 표현하였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오세 신동’으로 세종의 귀염을 받았던 매월당 김시습은 세조의 왕위 찬탈로 뒤바뀐 세상과 타협할 수 없었다. 그래서 “백 년 뒤 내 무덤에/꿈꾸다 죽은 늙은이라고 써 주오”라던 시처럼 고독과 방랑으로 마친 그의 삶은 독자에게 어떻게 살 것인지를 묻는다.
논술은 암기적인 지식이 아니라 독창적으로 생각하고, 그 생각을 말로 글로 표현하라고 요구한다. 600년이라는 긴 시간의 벽과 한문 소설이라는 중압감에 가로막힌 우리 고전들. 읽기 좋게 우리 시대의 감성으로 풀어쓴 이 책을 통해 세상을 등진 자의 꿈과 더불어 오늘을 사는 우리의 모습을 가다듬어 보는 것도 의미가 있다.
문재용 서울 오산고 국어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