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난 이와 남은 이.’ 지난해 8월 12일 축구 대표팀 핌 베어벡 감독과 홍명보 코치(왼쪽)가 FC 서울과 수원 삼성의 FA(축구협회)컵 경기를 관전하며 얘기를 나누고 있다. 동아일보 자료 사진
“베어벡은 선입견의 희생양”
“사람들은 핌을 코치 그릇으로밖에 보지 않았어요. ‘코치급 감독’이란 선입견을 갖고 비난부터 했죠.”
‘영원한 리베로’ 홍명보(38) 코치. 9일 서울 그랜드힐튼호텔에서 만난 그는 처음엔 말을 아꼈지만 “편견은 바로잡아야 한다”며 2007 아시안컵을 끝낸 뒤 핌 베어벡 감독이 자진 사퇴한 숨은 이유를 밝혔다.
“핌이 2002년 한일 월드컵에 이어 2006년 독일 월드컵 때도 대표팀 수석코치를 지내 사람들은 그를 ‘영원한 코치’로 생각했던 것 같아요. 감독을 맡은 뒤 성적이 나빠지니 기다렸다는 듯이 매도하기 시작했죠.”
홍 코치는 베어벡 감독이 떠난 뒤 “책임을 같이한다”며 동반 퇴진을 선언했으나 “대안이 없다”는 분위기가 형성되며 올림픽 대표팀 사령탑의 유력 후보로 거론됐다. 논란 끝에 성인 대표팀 감독은 공석으로 둔 가운데 박성화 감독이 올림픽호의 사령탑으로 결정됐고 홍 코치는 수석코치로 합류하게 됐다.
○ “베어벡은 축구 지식 해박한 좋은 감독”
“지난해 9월 2일 서울에서 열린 아시안컵 이란과의 최종 예선 때 한국이 1-0으로 앞서다 막판에 한 골을 허용해 비겼을 때부터 비난이 쏟아지기 시작했죠.”
베어벡 감독이 그해 6월 말 대표팀 사령탑에 올랐으니 8월 16일 대만에 3-0으로 이기고 고작 두 번째 경기 만에 표적이 된 셈이다.
“성적이 안 좋으면 비난을 받아 마땅합니다. 그러나 그날 결과는 비겼지만 경기 내용은 좋았어요. 너무 일찍 매를 맞은 거죠.”
선수들을 보러 프로 경기장을 찾을 때마다 축구인들의 눈초리에서도 이런 느낌은 전해졌단다. 자신을 무시하는 K리그와 소집 갈등을 겪으며 베어벡 감독의 마음도 한국을 떠나게 됐다는 얘기다.
홍 코치는 이런 분위기를 알았기에 사퇴 의사를 밝힌 베어벡 감독을 두 번 만류한 뒤에는 더 잡지 않았단다. 그는 일반적인 평가와는 전혀 달리 “핌은 참 좋은 감독이었다. 축구에 대한 해박한 지식은 물론 독일 일본 등에서 클럽팀 감독을 거쳐 경험도 풍부했다. 이미 지난 일이지만 너무 일찍 떠나게 돼 안타깝다”고 말했다.
○ 명색이 프로 선수가 마지못해 뛰니 문제
“선수들은 참 잘 싸웠어요. 3경기 연속 120분을 뛰었다는 것은 정신력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안 되는 일이죠. 다만 투지와 열정은 다른 겁니다. 우리 선수들은 하고자 하는 투지는 돋보이지만 축구에 대한 열정은 부족합니다.”
홍 코치는 “선수들이 거친 태클과 몸싸움을 해야 되고 그래야 이긴다고 잘못 생각하고 있다”며 “자기 포지션에서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를 아는 선수가 진정으로 이기기를 바라는 선수”라고 설명했다.
공수 전환 때 미리 파악해 움직이고 옆 포지션 선수가 잘못 판단할 때는 지적을 하고 동료를 위해서 어떻게 더 뛰어 주어야 할지를 알아서 움직이는 게 열정이다. 아시안컵 때 볼을 놓쳤을 때나 우리 편이 잡았을 때나 서 있다시피 한 모습이 자주 등장했는데 모두 ‘축구에 대한 열정’이 없었기 때문이란다.
홍 코치는 “축구를 즐겁게 해야 하는데 명색이 프로 선수가 마지못해 하다 보니 감독의 지시 없인 뛰지 않는 모습들이 많이 나타난다”고 지적했다.
○ 선수 존중하는 지도자가 꿈
스포츠과학의 기초인 운동생리학으로 석사를 딴 홍 코치는 고려대에서 스포츠마케팅으로 박사과정을 밟고 있다. 9월에 마지막 논문 학기가 시작된다. “감독은 마케팅 마인드를 갖고 축구란 상품을 팬들에게 잘 포장해 파는 방법도 연구해야 한다”는 생각 때문이다.
무엇보다 홍 코치는 선수들과 ‘소통’하는 지도자가 꿈이다.
“감독과 선수는 축구란 일을 통해 만나는 개별 인격체입니다. 서로 존중해야 합니다. 존중하되 지킬 것은 지키면서 승리라는 하나의 목표를 향해 나가야 합니다. 팬을 위해 몸을 던질 자세가 있어야 합니다.”
홍 코치는 “박성화 감독님을 잘 보좌하는 게 베어벡 감독을 더 돋보이게 하는 것이라고 믿고 꼭 2008년 베이징 올림픽 본선에 진출해 메달을 따도록 노력하겠다”고 다짐했다.
양종구 기자 yjong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