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4월 북한 평양 낙랑구역에 문을 열 예정인 평양과학기술대의 개교 준비를 위해 10월 평양을 방문할 예정인 박찬모 포스텍 총장. 사진 제공 포스텍
박찬모(72) 포스텍(포항공대) 총장이 10월 평양으로 떠난다. 내년 4월 평양시 낙랑구역에 문을 열 예정인 평양과학기술대의 개교 준비를 위해서다. 2001년 한국 정부와 북한 당국이 개교를 승인한 뒤 본격적인 준비를 시작한 지 6년이 흘렀다.
박 총장은 2005년부터 평양과기대 설립위원회 공동위원장을 맡아 개교를 위한 물밑 행보를 해 왔다.
그는 본보와의 인터뷰에서 “평양과기대를 국제 대학의 성격에 맞게 운영하는 쪽으로 북측과 합의했다”며 “육성된 북한의 정보기술(IT) 인력을 평양과기대 부설 지식산업단지와 개성공단에 들어갈 기업을 통해 활용하는 방법을 모색하고 있다”고 말했다. 인터뷰는 이달 7일 포항시 남구 효자동 포스텍 본관 총장실에서 두 시간 동안 진행됐다.
―31일 총장 임기가 끝난 뒤 10월 평양으로 떠난다는데….
“대학본부 건물과 교원, 학생을 위한 기숙사가 거의 다 들어섰다. 9월경이면 완공될 예정이다. 하지만 당초 9월 문을 연다는 계획과 달리 내년 4월로 개교가 연기됐다. 북한 당국의 결정에 따라 개교 시기는 얼마든지 조정될 수 있다. 현지에서 김진경 평양과기대 총장을 도와 개교 준비를 할 것 같다. 아마도 평양과기대의 4개 학과 가운데 하나인 정보통신공학부장을 당분간 맡을 것 같다.”
―학교에는 어떤 학생들이 입학하며 어떤 학과가 개설되나.
“우선 대학원을 먼저 연다. ‘기초과학’ ‘정보통신공학’ ‘농업식품공학’ ‘산업경영학’ 등 4개 학과가 개설된다. 학생들은 북한 당국에서 최고의 인재를 뽑아 주기로 했다. 김일성종합대학과 김책공대, 리과대학 컴퓨터기술대 졸업자 중 성적 우수자를 2∼3배수 뽑아 학교에서 최종 선발하기로 했다. 모든 수업이 영어로 진행되고 교재 역시 모두 영어 원서라서 영어를 잘하는 학생들을 우선 선발할 계획이다.”
4월 미국의 과학저널 사이언스지는 평양과기대의 개교 준비 소식을 전하고 교수가 45명에서 향후 250명까지 늘어날 전망이라는 기사를 냈다. 앞으로 대학원생은 600명, 학부생은 2000명을 확보할 계획이다.
―시장원리를 가르친다는데 북한 당국과의 협상 어려움은 없었나.
“없었다. 커리큘럼에는 북한의 특수성을 반영하지 않기로 했다. 포스텍과 한국과학기술원, 미국 버클리 캘리포니아대, 매사추세츠공대(MIT) 등 한국과 미국의 명문 대학 커리큘럼을 거의 그대로 활용한다. 특히 산업경영학부에서는 철저하게 시장경제 원리를 가르친다. 북한도 시장경제와 전자상거래, 국제 상법 등에 깊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
―북한에서도 시장경제에 관심이 높다는 얘기인가.
“지난해 여름 중국 베이징에서 김책공대 연구원 20명에게 IT에 관한 영어강의 프로그램을 진행한 적이 있다. 마이크로소프트 빌 게이츠 회장의 강연내용을 교재로 썼다. 마케팅 전략 등 경영학에 대한 북한 당국과 지식인들의 관심은 꽤 높다.”
―다른 어려움은 없나.
“실험 기자재 도입과 학내 인터넷 설치 문제가 남았다. 상당수 기자재가 전략물자수출 통제체제의 허가가 나야 반입될 수 있다. 더 많은 사람이 마음 놓고 기부할 수 있도록 투명성을 확보해야 한다. 현재 공동설립위원장을 맡고 있는 맬컴 길리스 미국 라이스대 전 총장과 미국에서 활동하는 한인 변호사들이 이 문제의 해결을 위해 노력 중이다. 상황은 긍정적이다. 인터넷 문제는 북한 당국도 긍정적으로 검토하고 있다.”
―포스텍, 건국대 등 국내 대학들과 최근 잇달아 학술교류협정을 맺었다. 남북한 과학자와 학생들의 상호교류에 대한 전망은…
“학술 정보와 교수 교류는 비교적 빠른 시기에 가능하겠지만 학생 교류는 좀 더 시일을 두고 기다려 봐야 한다. 북-미관계가 좋아지면 가능하리라 본다.”
―재원 마련은 어떤 방식으로 이뤄졌나.
“해외동포와 국내 기부자들이 많은 역할을 했다. 통일부의 남북협력기금에서 일부 도움을 받기도 했다.”
―‘국제 대학’이라는 모델을 처음부터 내걸었다. 어떤 개념인가.
“북한 사람들을 위주로 한 김일성종합대와 김책공대와 달리 평양과기대는 해외 출신 교수들로 채워진다. 평양과기대에 근무하는 이들 외국인 교원을 통해 국제 교류가 점진적으로 이뤄질 것으로 기대한다.”
―북한 IT 인력양성 등의 협력이 남북한 경제에 시사하는 바가 있나.
“아직까지 북한 IT 인력양성에 대한 말이 많다. 왜 해킹 등 사이버 공격을 할 능력을 키워 주느냐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그건 편견이다. 수학 등 기초과학이 튼튼한 북한의 IT 인력을 어떻게 활용하느냐가 앞으로 중요한 문제다. 국내의 소프트웨어 개발인력은 너무 비싸다. 인도나 파키스탄인을 데려오려 해도 문화 차이를 극복해야 하는 문제가 걸린다. 개성공단 등에 IT기업이 들어서면 값싸고 능력 있는 북한 인력을 활용하는 게 효율적이다. 이것이 통일 이후를 준비하는 일이기도 하다.”
포항=박근태 동아사이언스 기자 kunta@donga.com
:박찬모 총장:
△1935년 충남 천안 출생 △1958년 서울대 화학공학과 졸업 △1964년 미국 메릴랜드대 대학원 석사△1969년 미국 메릴랜드대 대학원 박사 △1979∼1989년 미국 가톨릭대 전산학과 교수 △1990∼2007년 포스텍 컴퓨터공학과 교수 △1996∼현재 중국 연변과학기술대 객원교수 △2003∼2007년 포스텍 총장 △‘정보문화인의 컴퓨터 배우기’ ‘북한의 정보통신기술’ ‘IT로 말하는 통일한국의 미래’ ‘21세기 신기술 시나리오’ 등의 공저가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