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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과학]‘19년 고릴라 사랑’ 목숨까지 던지다

입력 | 2007-08-18 03:01:00


◇안개 속의 고릴라/다이앤 포시 지음· 최재천 남현영 옮김/520쪽·2만 원·승산

우리에겐 영화 ‘에이리언’의 여전사로 알려진 시거니 위버. 그녀는 자신에게 1989년 골든글러브 여우주연상을 안겨 준 영화에 대해 이렇게 얘기했다.

“한 여인의 죽음을 헛되이 하지 않으려, 그녀의 믿음과 열정을 알리기 위해 연기했다.”

그 영화는 바로 ‘안개 속의 고릴라’(국내 제목은 ‘정글 속의 고릴라’)였다. 위버가 맡은 역할은 이 책의 저자인 다이앤 포시. 고릴라를 위해 평생을 바치고 결국 목숨까지 잃은 여성 동물학자다.

포시의 원래 직업은 환자를 돌보는 치료사였다. 오랫동안 ‘아프리카가 주는 광활함과 자유롭게 뛰어다니는 동물’에 매료된 그녀. 서른한 살에 덜컥 3년짜리 은행대출을 받아 사파리 여행을 떠난다. 겨우 7주였지만 여행의 의미는 컸다. ‘산악고릴라’라는 평생의 친구를 조우한 것이다.

“누군가는 운명이라 할 수도 있고, 또 다른 이는 황당하다고 할지도 모르겠다. 나는 그저 인생에서 뜻밖의 전환점이었다고 하겠다.”

‘안개 속의 고릴라’는 이렇게 시작하는 포시의 자전적 연구서다. 1966년 모든 걸 버리고 콩고의 카리심비 산으로 들어가 고릴라와 생활한다. 그들의 울음과 행동을 따라했다. 그러길 15년. 그 모든 생생한 관찰과 기록이 고스란히 이 책에 담겼다.

책 속의 고릴라는 흥미진진하다. 고릴라는 덩치와 달리 온순한 초식동물이지만 가족을 위해선 무섭게 변한다. 실제로 포시의 ‘친구’인 수컷 고릴라 ‘디지트’(포시가 붙인 이름)는 밀렵꾼으로부터 가족을 보호하려다 목숨을 잃는다. “고릴라는 매우 강한 가족 유대감을 갖고 있다. 어린 고릴라 한 마리를 잡으려 해도 가족의 다른 구성원 여러 마리를 죽여야 한다.”

포시는 관찰만 하는 학자는 아니었다. 밀렵꾼의 불법 포획을 막으려 온몸을 내던졌다. 멸종위기의 고릴라 보호를 위해 ‘디지트 기금’도 만든다. 책으로 세계적 명성을 얻은 뒤에도 고릴라 곁으로 돌아가 운동을 지속했다.

책에는 언급되지 않지만 아쉽게도 그녀는 1985년 12월 디지트의 뒤를 따른다. 숙소에서 처참하게 살해된 채 발견됐다. 밀렵꾼 소행으로 의심되는 의문의 죽음. ‘과거 속에서 살기보단 미래를 지키는 것에 더 많은 관심을 가졌던’(일기 중에서) 여성학자는 그렇게 사라졌다.

누구도 흉내 못 낼 삶을 살았으나 그의 꿈은 소박했다. “밝은 내일이 오길 바란다면 깨달아야 한다. 고릴라 보전 문제를 회피하는 건 베토벤과 이카로스, 그들의 배우자와 자손을 과거의 안개 속으로 사라지게 만들 것이란 사실을.”

그녀가 떠난 뒤 고릴라는 어떻게 됐을까. 다행히 산악 고릴라 수는 늘고 있다고 한다. 자칫 사라질 뻔한 우리의 삶에서 안개를 걷어낸 건 한 여성 덕분이다. 포시는 그런 찬사를 받을 자격이 충분하다. 원제 ‘Gorillas in the mist’(1983년).

정양환 기자 ra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