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배들 눈치 보느라 숨도 못 쉴 지경입니다.”
익명을 요구한 한 프로야구 심판은 요즘 상황을 이렇게 전했다. 경기에 나서는 구심 1명과 누심 3명, 대기심판 1명이 경기 전후에는 말을 한마디도 안 할 정도로 살벌한 분위기라는 얘기였다.
16일 잠실야구장에서 만난 심판은 같은 조 5명 가운데 2명만 함께 밥을 먹으러 갔다. 한 심판은 “겉으론 별 문제없이 지낸다. 하지만 시즌을 마치고 (심판 문제를) 얘기해 봐야 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지난달 19일 프로야구 26년 사상 초유의 심판 경기 보이콧 사태가 1일 천하로 끝난 지 한 달이 다돼 가지만 후유증은 계속되고 있다. 한국야구위원회(KBO)는 지난달 20일 문제를 일으킨 허운 전 심판과 김호인 전 심판위원장을 계약 해지했다. 경기 보이콧을 선언했던 심판 25명은 하루 만에 경기장에 복귀했다. 그러나 돌아온 심판과 남아 있던 심판 간의 불신의 벽은 여전히 높다.
현재 1군 경기에 나서는 심판은 20명. 이 가운데 조종규 차장과 A, B, C, D조 조장, 평심판 4명은 김 전 심판위원장, 나머지 평심판 11명은 허 전 심판을 따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황석중 심판위원장 직무대행은 “심판들이 잘해 보려고 노력하지만 화합하기 위해선 시간이 걸릴 것 같다”고 말했다.
1983년부터 2002년 퇴직할 때까지 1849경기에 출전한 ‘원로’인 박찬황 전 심판은 “후배들이 경기를 보이콧하려고 한 것은 명백한 잘못”이라면서도 “KBO도 심판들을 화합시키지 못한 책임이 크다”고 지적했다.
이상일 KBO 운영본부장은 “심판의 내부 갈등은 영향력 있는 심판 조장에게 줄서기 하는 관행에서 비롯됐다”며 “올 시즌이 끝난 뒤 KBO와 1, 2군 심판이 대화를 나눠 고른 혜택을 받는 제도를 만들 것”이라고 말했다.
갈등의 골이 깊어질 대로 깊어진 심판 간 갈등을 KBO가 어떻게 해결할지 궁금하다.
황태훈 기자 beetlez@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