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수해를 이유로 제2차 남북 정상회담을 갑자기 연기함에 따라 수해가 얼마나 심각한지 관심을 끌고 있다. 피해 상황에 대한 정확한 집계는 발표되지 않았지만 북한 당국과 국제지원단체의 발표 내용을 종합하면 큰 피해를 본 것으로 보인다.》
북한 당국은 사태의 심각성을 감안한 듯 이례적으로 피해 지역 상황을 관영 언론을 통해 신속히 공개하고 있다. 특히 큰 피해를 본 평남 북창의 한 고위 간부는 조선중앙TV에 출연해 “나라 전체가 피해를 보았으니 국제사회가 많이 지원해 주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관측 사상 최악의 홍수=북한에는 7일부터 11일까지 기록적인 폭우가 내렸다. 유길렬 북한 중앙기상연구소 소장은 조선중앙통신과의 인터뷰에서 “대동강 중·상류의 최근 평균 강수량은 기상관측 이래 가장 많은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양덕, 신양 등 평남 북부지역은 지난해 수해가 아직 복구되지 않은 상황에서 또다시 덮친 물난리로 절망적인 상황일 것으로 보인다.
▽현재까지 피해 상황=북한 당국이 수해 이후 국제적십자사연맹(IFRC) 등에 밝힌 자료를 보면 사망·실종자는 303명, 이재민은 30만 명에 이른다. 또 8만8400채의 집이 파괴되고 농경지의 11%가 피해를 본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 전체 농경지가 1만 4900㎢ (150만 정보)쯤 되는 점을 감안하면 최소한 1490㎢(15만 정보)가 피해를 본 셈이다. 이로 인해 40만 t 이상의 소출 감소가 예상된다.
지난해와 비교하면 가옥 침수는 3배, 농경지 침수는 5배나 많다. 반면 지난해 북한 당국이 밝힌 공식적인 인명피해가 사망 549명, 실종 295명, 부상 3043명인 데 비해 올해는 사망·실종자 수가 적다. 북한 대부분 지방에서 통신과 교통이 마비된 상황임을 감안할 때 이는 아직 정확한 피해 파악이 이뤄지지 않았음을 입증하는 것일 수도 있다.
평양도 피해가 크다. 북한 중앙통신은 16일 “평양시에서 도로 2만3000m²와 주택 6400가구가 파괴됐다”면서 “4개 이상 구역에서는 물이 2m까지 차올라 교통이 마비되고 전력 공급과 통신망이 차단됐다”고 보도했다.
북한 주민 대다수는 장마당 등에 의존해 경제활동을 벌이고 있어 평소에는 북한 내 식량의 절대량이 부족해도 중국에서 수입할 수 있었다. 하지만 교통이 마비되면 주민들의 경제활동도 중단돼 굶어죽는 사람이 속출할 수밖에 없다. 북한의 쌀값은 최근 보름새 2배 가까이 오른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수해로 평남 양덕과 신양 2개 군을 지나는 평라선(평양∼나진) 철로가 끊겼을 때 인력에만 의존하다 보니 복구에 3개월이나 걸렸다. 북한 동서 및 남북을 잇는 유일한 철로인 평라선이 파괴되면 국가 기능은 사실상 마비된다. 올해 평라선은 지난해보다 더 큰 피해를 본 것으로 알려졌다.
탄광 침수와 발전소 피해도 커 전력 공급에도 막대한 차질이 예상된다. 여기에 복구와 방제 작업이 지연될수록 수인성 전염병과 농작물 병해충 피해도 커질 것으로 보인다.
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