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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지변…불가항력’ 그대로 믿어도 되나

입력 | 2007-08-20 03:05:00


▲조선중앙통신은 18일 북한 강원 회양군 한 마을의 집들이 폭우로 물에 잠긴 모습을 보도했다. 북한 강원도는 이번 폭우로 250명의 사망·실종자가 나고 가옥 2만8000여 채가 파괴되거나 침수되는 등 가장 큰 피해를 본 지역이다. [로이터/동아닷컴특약]

제2차 남북 정상회담이 10월로 연기된 것에 대해 정부는 비상사태에 준하는 ‘천재지변’에 따른 불가항력이라고 설명하지만 일부 전문가와 한나라당은 숨은 의도가 있는 것 아니냐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북한이 이번 대통령 선거에서 자신들의 구미에 맞는 정권이 탄생하는 데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카드로 남북 정상회담을 활용하겠다는 전략을 세운 것이라는 분석도 일각에서 나온다.

▽“더 많은 지원을 끌어내라”=북한이 수해의 심각성을 강조해 국제사회의 더 많은 지원을 끌어내려는 의도라는 분석이 나온다.

일본 마이니치신문 인터넷판은 18일 “최근 비명에 가까운 북한의 잇따른 수해 관련 보도는 해외에 비참한 실상을 인식시키려는 의도가 있는 것 같다”고 보도했다.

북한은 정상회담을 연기하며 수해를 강조해 지난해 10월 핵실험 이후 국제사회의 경색된 대북 인식과 유엔의 제재에 변화가 나타나기를 기대한다고 이 신문은 전했다.

실제로 조선중앙통신은 평상시 주민들의 생활상이 담긴 자료를 해외에 거의 내보내지 않지만 이번에는 집을 잃고 천막생활을 하는 이재민이나 물에 잠긴 농경지 화면 등을 계속 방영하고 있어 이 같은 분석을 뒷받침하고 있다.



▽핵(核) 담판은 미국과 한다?=수해라는 핑계거리를 찾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남북 정상회담에서 핵 문제를 직접 다뤄야 하는 상황을 피하기 위해 회담 연기라는 카드를 활용한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전통적으로 핵 문제와 안보 문제는 미국과 해결해야 할 문제라는 인식을 보여 온 북한으로서는 정상회담에서 북한의 핵 문제에 대한 가닥을 잡아야 한다는 남측의 여론이 부담스러웠을 가능성이 높다.

일각에서는 노무현 대통령이 15일 광복절 기념사에서 “무리한 욕심을 부리지 않겠다”고 하는 등 기대 수준을 낮춘 것에 대한 ‘북한식 화답’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고려대 유호열 북한학과 교수는 “북한으로서는 노 대통령의 메시지를 ‘우리는 줄 것이 많지 않다’는 신호로 받아들였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대선에 대한 영향력 극대화?=일단 8월 말에 비해 대통령 선거와 더 근접한 시점인 10월 2∼4일 정상회담을 개최하기로 함에 따라 북측으로서는 대선에 대한 영향력을 극대화할 수 있게 됐다는 정치적 판단을 했을 가능성도 제기된다.

실제로 북한은 1월 1일 신년 공동사설에서 한나라당을 겨냥해 “대통령 선거를 계기로 매국적인 친미반동보수세력을 결정적으로 매장하자”고 선동하는 등 기회가 있을 때마다 ‘한나라당이 집권하면 한반도가 전쟁의 화염에 싸일 것’이라는 메시지를 지속적으로 내놓고 있다.

▽회담 무산의 전조?=조심스럽지만 최악의 경우 남북회담이 무산될 가능성이 있는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온다.

남은 기간 중 6자회담을 통한 협상에서 핵 불능화에 대한 상응 조치가 만족스러운 수준으로 보장되지 않거나 정상회담을 위한 막후 조율이 순조롭지 않을 경우 북한이 모종의 결단을 내릴 가능성도 있다는 것.

고려대 남성욱 북한학과 교수는 “10월 중 회담 성사를 장담할 수 없다”며 “북한이 약속을 물 건너가게 할 때 사용하는 방법이 연기다”라고 말했다.

하태원 기자 triplets@donga.com

남원상 기자 surreal@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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