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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룹 사랑과 평화 “자존심 걸고 밴드이름 지키겠다”

입력 | 2007-08-21 03:03:00

홍익대 근처 지하연습실에서 만난 국내 최장수 밴드 ‘사랑과 평화’. 왼쪽 앞줄부터 시계 방향으로 이철호, 송기영, 이승수, 정재욱, 홍현민. 김미옥 기자


“가요시장이 죽었다고? 아, 그렇게 되니 얼마나 편해. 앨범 몇 장 나가는지 신경 안 써도 되고…. 우린 정했어요. 음반은 팔려고 만드는 게 아니고 우리가 얼마나 치열하게 음악을 했는지 보여 주는 증거물인 거죠. 그러니 앞으론 꼬박꼬박 내려고.”(보컬 이철호·57)

‘한동안 뜸했었지’, ‘울고 싶어라’로 유명한 국내 최장수 밴드 ‘사랑과 평화’가 8집을 냈다. 2003년 7집을 끝으로 앨범을 내지 않았으니 4년 만이다.

최근 서울 홍익대 근처 지하 연습실에서 만난 멤버 5명은 아무리 바빠도 일주일에 최소 2, 3번은 모인다. 그래서 이들은 ‘밴드연습의 교과서’로 통한다. 멤버 모두 음악 이외의 ‘업’을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30년 동안 정규앨범 7장밖에 안 냈으니 솔직히 게으른 부분도 있어요. 하지만 돈벌이를 위한 기획 앨범은 내고 싶지 않더라고요.”(기타 송기영·42)

이번 앨범은 사실 2005년에 이미 녹음까지 마쳤던 것이다. 하지만 막상 음반을 내려고 하니 나서는 기획사가 없었다. 더는 기다릴 수 없어 녹음실 대여비만 들여 이번 8집을 자체 제작하게 됐다.

새 앨범엔 12곡이 담겨 있다. ‘살다 보면 내리막이 있고 오르막도 있어 너무 상심 마’라는 가사가 반복되는 ‘함께 가야 해’를 비롯한 대부분의 곡은 펑키와 솔 장르다. 단순한 멜로디와 쉬운 가사가 듣기에 부담스럽지 않다. ‘즐겁게 신나고’에선 랩도 처음으로 시도했다.

“여러 장르로 이뤄진 7집을 만들 땐 ‘이게 대체 무슨 음악이지?’ 하며 중구난방이라는 생각에 다들 불만이 있었어요. 하지만 8집을 준비하면서 구심점이 생겼죠. 30년 만에 우리만의 리듬을 찾았다고나 할까요.”(베이스 이승수·43)

이남이, 최이철, 이근수 등 많은 가수가 거쳐 간 사랑과 평화는 현재 초창기 멤버인 리드보컬 이철호를 비롯해 키보드 홍현민(38), 기타 송기영, 베이스 이승수, 그리고 4개월 전 합류한 드러머 정재욱(26)으로 구성돼 있다. 다양한 세대로 이루어졌기에 팬 층도 여든을 바라보는 노신사에서 10대까지 다양하다.

“일반인은 그저 오래된 밴드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음악을 하는 사람들에게는 우리 이름 자체가 자존심”이라며 “사랑과 평화라는 이름을 지키는 것이 우리가 음악을 하는 이유”(이철호)라고 말했다. “사랑과 평화. 이보다 좋은 뜻이 어디 있겠어요. 얼마나 좋은 이름입니까. 그러니 꼭 지켜야죠.”

앞으로의 계획을 물었다. 기자의 우문에 이구동성으로 현답이 돌아왔다.

“공연이죠. 홍대 부근 소극장 위주로 많이 해 보려고. 아니, 다른 무슨 계획이 있겠어요. 가수가 무대에서 노래 부르는 거 말고….”

염희진 기자 salthj@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