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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가의 탐욕이 금융위기 불렀다

입력 | 2007-08-21 03:03:00


‘중성자폭탄 대출.’

미국 부동산업계에서는 오래전부터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를 이렇게 불렀다. 중성자폭탄은 건물은 그대로 남겨놓은 채 인명 살상 효과를 내는 폭탄. 서브프라임 모기지로 집을 산 서민들이 압류 사태로 집에서 쫓겨나지만 집은 그대로 남아 있다는 점에 빗댄 말이었다.

주택시장 침체가 진행되면서 실제로 미국에선 지난해 말부터 모기지 이자를 감당하지 못한 서민들이 압류 처분으로 집에서 쫓겨나는 사례가 급증했다. 이에 따라 서브프라임 모기지 업체들의 파산 신청도 잇달았다.

그러나 정작 금융시장은 마치 아무 일도 없다는 듯이 잘나갔다. 7월에 다우존스산업지수는 14,000선을 돌파했다.

그렇다면 신용경색 위기가 본격화할 때까지 왜 똑똑한 미국 뉴욕 월가의 금융전문가들은 서브프라임 모기지 파장을 예측하지 못한 것일까.

뉴욕타임스와 영국의 경제주간 이코노미스트 등은 최근 잇달아 서브프라임 모기지 경고가 무시됐던 이유를 분석하는 기사를 게재했다.

이코노미스트는 최근호에서 서브프라임 모기지 채권이 월가의 첨단 금융기법을 통해 ‘변신 과정’을 거치면서 투자자들 사이에서 리스크(위험)에 대한 감각이 무뎌진 점을 들었다. 서브프라임 모기지 채권이 자산담보부증권(CDO), 대출담보부증권(CLO) 등 신용파생상품으로 변신하면서 월가에서는 ‘위험 채권’보다는 ‘수익률이 높은 채권’이라는 인식이 더 강했다.

뉴욕타임스는 19일 월가의 탐욕에도 화살을 돌렸다. 이 신문은 “많은 헤지펀드 매니저가 높은 수익률에만 눈이 멀어 그들이 사들인 채권이 사실은 리스크가 크다는 사실을 놓쳤다”며 “문제의 채권을 산 매니저들은 모기지 전문가가 아니라 일반적인 채권전문가인 점도 사태를 악화시킨 요인”이라고 분석했다.

그런데 투자의 귀재 워런 버핏 버크셔 해서웨이 회장은 올해 5월 주총에서 이미 “파생상품도 주식이나 채권처럼 때때로 엄청나게 잘못 평가된다”며 부정적인 시각을 내비친 바 있다. 그러나 월가에서 그의 경고는 ‘파생상품에 대해 부정적인 시각을 가진 투자자가 매일 하는 똑같은 소리’로 치부되면서 그다지 주목받지 못했다.

이와 함께 신용평가회사의 책임론을 거론하는 시각도 있다. 스탠더드 앤드 푸어스(S&P)와 피치 등 주요 신용평가회사는 올해 7월에 이르러서야 서브프라임 모기지 관련 채권 신용등급을 하향 조정하기 시작해 뒷북만 쳤다는 것이다.

한편 미 의회는 10월 서브프라임 모기지 관련 청문회를 개최한다는 계획이어서 서브프라임 모기지 파문을 둘러싼 책임 공방은 조만간 정치권으로도 번질 듯하다.

뉴욕=공종식 특파원 k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