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를 가지고 노는 신들이 백인도 아니고 영어로 말하지 않는 우리 할아버지나 할머니 같은 모습을 하고 우리말을 할 것처럼 느껴질 때 진정한 우리 과학기술이 자리매김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본문 중에서》
세상에서 가장 큰 것은 무엇일까. 누구든 우주라고 대답할 것이다. 아주 작은 점에서 태어난 우주는 137억 년 동안 엄청난 속도로 팽창해 왔다. 지구에서 빛의 속도로 그만큼 오랜 시간을 달려야 우주의 끝에 도달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놀랍게도 우리의 머리는 우주에 비해 결코 작지 않다. 우리의 머릿속에는 그렇게 커다란 우주의 거의 모든 것이 들어 있기 때문이다.
우주를 우리의 머릿속에 담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우주는 작은 행성부터 수천억 개의 별로 이루어진 은하, 나아가 수천억 개의 은하들이 거미줄처럼 복잡하게 얽혀 있기 때문이다. 어디 그뿐인가. 어느 날 갑자기 은하 전체의 밝기로 빛나는 초신성부터 빛마저 빨아들이는 무시무시한 블랙홀에 이르기까지, 우주는 수수께끼의 전시장이니 말이다.
그렇다고 걱정할 필요는 없다. 우주는 3단계의 간단한 계층적 구조를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태양계와 은하계, 우주계이다. 그런 뜻에서 박석재 한국천문연구원장은 아이들이 우주를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쉽게 풀어 쓴 이 책에서 ‘지구 신령’ ‘은하 신령’ ‘우주 신령’이라는 캐릭터를 만들어 냈다. 태양계와 지구, 별과 은하, 우주 전체를 관장하는 세 명의 신령에게 귀를 기울이다 보면 어느새 우주의 상당 부분을 머릿속에 담게 된다.
사진은 멋있어야 하고 글은 쉬워야 한다. 아이들에게 즐거움을 주려는 과학책이라면 더욱 그렇다. 저자는 블랙홀 연구의 권위자이며 천문학 대중화의 선도자이다. 경력에서 우러나오는 글은 권위를 갖추고 있으면서도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춰 쓰였다. 우주 화보집이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을 만큼 화려한 천체 사진들은 우주의 신비와 매력을 전한다.
더욱 빛나는 것은 저자가 이 책을 통해 아이들에게 전해 주려는 메시지다. 우주를 비롯한 과학의 모든 분야를 접하다 보면 남의 이야기 같은 이질감이 생기는 것을 부인할 수 없다. 왜 그럴까. 저자는 우리가 접하는 과학이 우리 문화와 궤를 같이하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간파했다. 그 결과 과학에 열광하던 아이들이 자라면서 과학의 문외한이 되고, 또 이공계의 위기라는 현실이 전개되는 것은 아닐까.
아이들은 놀이를 통해 모든 것을 배운다. 이 책에 등장하는 우주의 신령들도 우주 천체를 가지고 놀이를 하며 새로운 지식을 전해 준다. 우주의 신령이란 구름을 타고, 호랑이 등을 타고 우리네 조상과 함께 울고 웃던 산신령과 다르지 않다. 그처럼 친숙한 우주의 신령들과 별을 따서 계급장놀이를 하고, 블랙홀에서 나오는 X선으로 몸속의 뼈를 들여다보며 깔깔거릴 수 있다면, 아이들에게 과학은 우리의 문화에서 우러나온 지식으로 인식되지 않을까.
꿈속에서 별을 가지고 공놀이를 하다가 블랙홀에 빠뜨렸다. 우주 신령이 나타나 하는 말. ‘이 별이 네 별이냐?’ 이 책을 읽은 아이는 이런 꿈을 꾸게 될지도 모른다.
정창훈 과학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