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장된 개표 현장한나라당 대선 후보를 선출하는 전당대회가 열린 20일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 체조경기장. 이명박 전 서울시장이 박근혜 전 대표를 누르고 한나라당 대선 후보로 확정됐다. 김동주 기자
한나라당 이명박 대선 후보는 21일 국립서울현충원을 참배한 뒤 종교지도자와 전직 대통령들을 예방할 계획이다. 9월 초에는 경선 과정에서 추진하다 취소했던 미국과 러시아 방문에 나선다. 그러나 당장 당 안팎에서 직면한 현안들이 녹록지 않다.
▽‘심적 물리적 부담 커진 이 후보’=일단 당 내에서는 불과 2452표 차로 패배한 박근혜 전 대표와 캠프 인사들을 본선 가도에서 어떻게 끌어안을 것인가가 큰 과제다.
박 전 대표는 일단 경선 결과에 깨끗하게 승복하고 백의종군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를 위해 적잖은 ‘당근’을 제공해야 하는 이 후보는 ‘간발의 승리’가 가져온 심적 물리적 부담이 그만큼 커졌다.
이런 상황을 감안할 때 향후 이 후보가 박 전 대표와의 회동을 통해 대선 후보 선거대책위원회의 진용 구성에서부터 박 전 대표 캠프의 측근 인사들 챙기기, 올 연말 대선 승리의 전리품 챙기기에 이르기까지 일일이 상의하고 의견을 조율할 가능성도 있다.
영남권의 한 초선 의원은 “이 후보는 또다시 박 전 대표와 지루한 2라운드 대결을 펼쳐야 할 것”이라며 “‘영남 보수의 힘’을 뼈저리게 느낀 이 후보가 대대적인 당 개혁 드라이브를 걸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 촬영 : 이종승 기자
당 밖으로는 범여권에서 쏟아질 파상적인 ‘네거티브’ 공세를 어떻게 막아낼 것인지가 관건이다. 경선 과정에서 이 후보는 ‘도곡동 땅’과 ‘BBK 투자 사기 의혹’ 등으로 집중 포화를 맞았지만 아직 “속 시원하게 해명되지 않았다”는 여론이 적지 않기 때문.
여기에다 경선 막판까지 계속된 불법선거 관련 각종 고소 고발 건까지 이 후보의 발목을 잡고 있어 후보 부적격 논란이 다시 일 경우 지지율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또 10월 2∼4일로 예정된 남북 정상회담이 한반도에 급속한 해빙무드를 불러오고 본선 싸움이 범여권과 한나라당 간의 ‘평화 대 반평화’ 세력의 대결로 고착화할 경우 이 후보가 이 파고를 어떻게 넘을 것인지도 관심사다.
▽범여권 대선 구도에 미칠 파장 관심=이 후보는 범여권 대선주자들과 맞대결하기보다는 ‘비전을 갖춘 지도자, 통합의 지도자’ 이미지를 구축하면서 다른 행보를 보일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전직 대통령 예방이나 미국 러시아 등 해외 순방을 계획 중인 것도 내부적으로는 범보수층 결집에 앞장서면서 국제적인 감각을 갖춘 지도자의 이미지를 구축하려는 것이라는 게 참모들의 얘기다.
이 후보의 외연 확대 작업이 범여권의 대선 구도에 어떤 파장을 미칠지도 관심사다.
한나라당 지도부와 이 후보 측은 대전 충청권을 기반으로 하는 국민중심당과의 통합은 물론 민주당과의 연대까지 적극 모색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을 기반으로 하고 ‘덜 보수적이고 덜 영남적인’ 이 후보의 등장으로 한나라당은 적어도 기존 지역 및 이념구도 싸움에서 확실히 유리해졌다는 분석도 있다.
이 후보 체제의 연착륙 여부는 범여권의 대선 구도와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강원택 숭실대 교수는 “일반화하기는 어렵지만 박 전 대표와 싸울 경우 전통적인 여권 지지층 결집이 쉽고 이념적인 대립각을 세울 수 있기 때문에 ‘영남 대 호남’, ‘민주 대 반민주’의 대결 구도로 가져갈 수 있다”며 “이 후보의 경우 이런 구도 싸움이 어려워져 범여권의 후보 선출과 본선 전략에 적잖은 변화를 가져올 것”이라고 말했다.
이 때문에 이 후보 체제가 안정국면에 진입하고 높은 지지율을 유지할 경우 범여권은 후보 단일화를 반드시 성사시키려 할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이종훈 기자 taylor55@donga.com
▼미소짓는 ‘넘버3’ 원희룡, 인지도-지지도 ‘두 토끼’ 잡아▼
20일 막을 내린 한나라당 대선후보 경선에서 3위를 차지한 원희룡(사진) 의원은 이번 경선의 ‘보이지 않는 수혜자’로 평가받고 있다.
이명박 전 서울시장, 박근혜 전 대표 등 두 유력 주자로의 표 쏠림 현상이 심했던 이번 경선 여론조사에서 원 의원은 3.3%에 불과하지만 ‘빅2’를 제외하면 최고의 득표율을 올려 당의 ‘차세대’ 주자로서 의미있는 기록을 남겼다.
경선 초반만 해도 대중적 인지도나 당원 지지도에서 앞서 있다고 평가됐던 홍준표 의원을 2398표(1.46%) 대 1503표(0.92%)로 꺾는 ‘뒷심’도 발휘했다.
차기에는 ‘메이저 후보’로 나설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 당 안팎의 자연스러운 관측이다.
원 의원이 향후 당내 30, 40대 개혁세력의 중심추 역할을 맡아 당내 체질 개선을 이끌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특히 당내에서 비슷한 노선을 걸어 왔던 고진화 의원이 경선 참여 한 달여 만에 후보직을 사퇴하고 범여권 진영에서는 ‘양지만 좇는 386 의원’들이 비난을 받는 상황에서 끝까지 경선을 완주하며 ‘원칙을 지키는 젊은 정치인’ 이미지를 남긴 것도 그로서는 적잖은 수확이다.
한나라당의 기존 노선에 대해 늘 비판의 날을 세워 왔던 그는 20일 전당대회 연설에서는 “한나라당이 국민에게 감동과 신선한 충격을 줄 수 있음을 확인했다”며 당의 일원임을 자부했다.조인직 기자 cij1999@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