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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정호 칼럼]언론의 통제, 동서고금

입력 | 2007-08-22 20:06:00


얼마 전까지만 해도 ‘언론출판’ 하던 말을 요즈음엔 그냥 ‘언론’이란 말로 통폐합해 버렸다. 원래 프랑스혁명 당시 ‘인권선언’이나 미국의 수정헌법 제1조에 나오는 ‘언론출판’의 자유란 자유롭게 말(언론·speech)하고 자유롭게 글을 인쇄(출판·press)하는 것을 가리키고 있었다. 이른바 ‘언론’의 자유와 동의어가 되고 있는 신문(press)의 자유는 출판(press)의 자유에서 출발했다.

서양의 언론 역사는 거의 ‘언론 통제의 역사’였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1450년경 구텐베르크의 활판인쇄기술이 개발되자 1500년까지의 반세기 동안 유럽에서는 1000여 곳의 인쇄소에서 3만5000종의 책을 찍어 냈고 그 총발행부수는 무려 1000만 권을 헤아렸다고 한다. 책과 지식을 독점했던 당시 권력(교회와 왕실)이 인쇄기술을 ‘새까만 기술’이라 증오하고 통제 탄압에 나선 것은 필연의 귀결일지 모른다. 우선 인쇄소 설치의 제한 조치가 나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밀출판이 성행하자 그를 막기 위해 저자와 인쇄소를 명기하는 ‘간행 요목(Imprint)’의 부착을 모든 인쇄물에 강요했다. 그래도 그를 무시하는 불온 출판물이 쏟아지자 책이 찍혀 나오는 것을 막지 못한 당국은 마침내 책을 읽는 것을 통제하게 됐다. 이른바 ‘금서목록(index librorum prohibitorum)’, 그걸 간단하게 줄여 그냥 ‘목록(인덱스·Index)’이라 하기도 했다.

조선시대에도 ‘언로’는 보장

이상하기도 하고 신통하기도 하고 어떤 면에선 자랑스럽기조차 한 것은 저러한 서양의 언론 통제 사례를 우리나라 언론사에선 거의 찾아볼 수가 없다는 사실이다. 물론 소극적인 언론 통제의 부재가 곧바로 적극적인 언론 자유의 실재를 반증해 주는 것은 아니다. 도대체 자유로운 언론, 탄압해야 할 언론조차 없는 곳에는 언론 통제도 얼마든지 없을 수 있고 있을 필요도 없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고려시대부터 출판(press)기술과 출판문화의 세계적인 선진국이었다.

정부 시책과 관리들을 감시하고 규찰(糾察)하는 언론(말과 글)의 기능을 존중한 점에 있어서도 우리나라는 조선시대에 이미 세계를 앞서고 있었다. 섬나라 영국은 예외지만 유럽 대륙의 신문은 국내 정치에 대해 논평하는 사설란을 둘 수 있게 된 것이 겨우 19세기 중엽부터이다. 그에 비해 조선왕조는 군주에게 직언하고 백관을 규찰하는 언론의 역할을 개인이 아닌 정부의 전담 기구에 맡기고 있었다. 사간원(司諫院)과 사헌부(司憲府)가 그것이다. 사헌부를 고려시대엔 어사대(御史臺)라 불렀기에 두 기관의 관원을 대간(臺諫) 또는 ‘언관’이라 일컬었다. 그들의 역할은 현대의 언론, 언론인의 기능에 상응한다. 백성의 언론(말과 글)이 조정에 전달되는 여러 통로를 ‘언로(言路)’라 했고, 이 언로가 열리느냐 막히느냐에 나라의 흥망이 좌우된다고 조선시대 언관과 사대부들은 믿고 있었다. 조선왕조실록엔 ‘언로’라는 말이 4700여 건이나 나온다는 통계도 있다. 우리가 경험하지 못한 전통사회에 이미 있던 일이다.

근대화 이후 우리는 언론에 관해 전통사회에 없던 일들을 경험하게 됐다. 두 가지만을 들어 본다. 하나는 전두환 대통령 시대에, 또 하나는 노무현 대통령 시대에.

광주 대학살과 신군부의 쿠데타를 지켜본 젊은이 중 일부가 좌경화되면서 대학가엔 한동안 좌익서적이 범람했다. 그를 단속한답시고 정부는 한국 역사에 전례 없는 ‘금서목록’을 작성해 배포했다. 결과는 읽지 말라는 ‘금서목록’이 읽어 보라는 독서의 ‘인덱스’가 되고 말았다.

후진적 통제가 ‘선진화’라니

지금 노무현 정부의 언론 정책을 보면 세계에 자랑할 조선시대 이래의 이 나라 언관을 추방하고 ‘언로’를 막아 보자는 일에 열중하는 듯이 보인다. 기자들의 정부기관 출입과 관리들 접촉을 원천적으로 봉쇄하고 그를 위한 ‘방호요원’을 대폭 늘린다는 조치들이 그것이다. 왕조시대도 몰랐던 이 후진적인 언론 통제를 ‘취재지원 시스템 선진화 방안’이라 이름 붙인 것은 냉소적이다. ‘민주’나 ‘정의’와는 아무 상관없이 쿠데타로 집권한 신군부가 그들 여당을 ‘민주정의당’이라 이름 붙인 것을 벤치마킹한 것일까.

최정호 울산대 석좌교수·본보 객원大記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