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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코끼리는 이젠 유럽서 대접 못받아”

입력 | 2007-08-29 03:01:00


“오페라 무대에 오르기 30분 전에는 에스프레소를 한 잔 합니다. 이탈리아의 진한 에스프레소는 정신을 확 깨게 해서 정신을 집중시키는 효과가 있어요.”

내년 4월 한국인 테너 최초로 이탈리아 ‘라 스칼라’ 무대에서 오페라 ‘맥베스’로 데뷔하는 테너 이정원(39) 씨. 그는 “이탈리아에서 성악을 공부하는 한국인 유학생은 5000여 명으로 추산된다. ‘라 스칼라’는 이탈리아 유학생이라면 오디션만이라도 한 번쯤 보고 싶어 하는 꿈의 무대”라고 말했다.

유럽의 오페라 극장은 오디션을 통해 철저히 실력을 검증하는 무대다. 이 씨를 비롯해 독일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 주 ‘2003년 최고의 성악가’로 선정된 소프라노 박은주(42), 이탈리아 베로나 아레나 극장과 볼로냐 극장 등에서 주역가수를 맡은 소프라노 김성은(44), 독일 아헨극장에서 활약하는 테너 정의근(38), 스페인 아라갈 국제성악콩쿠르에서 우승한 뒤 이탈리아 피렌체 극장에서 활동하는 바리톤 한명원(29) 씨 등 유럽 오페라극장의 주역가수들이 다음 달 1일 국내에서 갈라 콘서트를 연다. 27일 오후 이정원, 박은주, 한명원 씨와 만나 유럽 오페라 무대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치열한 생존경쟁=“마에스트로 리카르도 무티가 스칼라에 예술감독으로 있을 땐 동양인을 무대에 세우지 않았어요. 이탈리아 전통극장은 유럽인만 무대에 설 수 있었는데, 4년 전부터 출연진의 10%는 유럽 외 지역 출신도 무대에 설 수 있도록 개방됐어요.”

오페라 ‘투란도트’의 칼라프 역으로 52번이나 유럽 무대에 선 테너 이정원 씨는 스스로의 힘으로 콧대 높은 ‘라 스칼라’의 벽을 뚫었다.

소프라노 박은주 씨는 “요즘 독일의 오페라 극장에는 옛 소련, 동구권 출신 훤칠한 미녀들이 싼 개런티에 출연하겠다며 줄 서 있어 늘 긴장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는 또한 “유럽에서 ‘무대 위의 코끼리’는 이제 대접받지 못한다”며 “남녀 모두 뚱뚱한 외모로는 캐스팅 되지 않는다”고 전했다. 그에 따르면, 소프라노들도 프로필 사진을 찍을 때 이전처럼 드레스를 입지 않고 모던한 빨간 재킷을 즐겨 입는다. 또 얼굴과 몸매는 물론 성악가들이 목소리가 변할까 봐 금기시하는 코 성형수술까지 한 성악가도 많다는 것.

▽철저하게 실력만 따져=김성은 씨와 박은주 씨는 부산대 2년 선후배 사이. 김 씨는 1993년 이탈리아 트레비조에서 열린 콩쿠르에서 벨리니의 오페라 ‘몽유병의 여인’의 주역으로 뽑혔고, 박 씨는 1995년 독일 쾰른음대 시절 브레머하펜 극장에 전속가수로 데뷔한 이후 철저히 실력을 바탕으로 유럽무대에 우뚝 섰다. 국내에서는 지방대 출신으로 중앙 무대에 서기란 무척 힘들다. “오디션에서는 콩쿠르나 무대 경력을 볼 뿐 어느 학교, 누구 제자냐고 묻지 않는다.”(한명원) “국내 무대에서 노래할 때면 눈앞에 선생님과 선배들의 얼굴이 떠올라 부담스럽다. 반면 아는 사람이 없는 유럽무대에서는 마음이 정말 편하다.”(이정원)

▽유럽무대에서 생존하려면=성악가들은 유럽 오페라극장에서 생존비결에 대해 기본적인 노래 실력 외에 독일어, 이탈리아어, 프랑스어 등에 대한 언어실력을 첫 번째로 꼽았다. 또한 수많은 오디션을 거치며 절대 포기하지 않는 힘이 두 번째다. 박 씨는 “오페라는 문화와 역사가 담긴 종합예술”이라며 “유럽에서는 음악회를 마친 뒤 후원자들과 파티를 많이 하는데 정치, 환경, 세계 이슈를 모르면 꿀 먹은 벙어리가 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공연안내▼

9월 1일 오후 7시 경기 성남아트센터 오페라극장. 지휘 주세페 핀치(라 스칼라 극장 지휘자). 연주 프라임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1만∼5만 원. 1588-7890

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