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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정부, 기업 정신 성장 못하게 뚜껑 닫아버려”

입력 | 2007-08-30 02:58:00

존 나이스빗 교수는 29일 본보와의 단독 인터뷰에서 “한국 정부가 자기 무덤을 파고 있는 유럽식 사회복지 모델을 왜 따라가는지 이해할 수 없다”며 “차기 정부가 개방을 통한 경제 개혁을 지향하는 노선을 채택하면 국가 전체가 큰 혜택을 볼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 미래 성장동력 산업으로 생명공학기술(BT)을 제시했다. 홍진환 기자


세계적 미래학자 존 나이스빗 인터뷰

“한국이 성공하려면 경제개혁과 개방이 차기 대통령 후보 공약 중 상위에 올라가야 합니다.”

앨빈 토플러와 함께 ‘미래학’의 양대 산맥을 이루고 있다는 평을 듣는 세계적인 석학(碩學) 존 나이스빗(78) 교수는 29일 본보와의 단독 인터뷰에서 현재 한국의 정책 방향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하면서 이같이 말했다.

그는 “한국이 자기 무덤을 파고 있는 유럽식 사회 모델을 왜 따라가는지 이해가 안 된다”며 “경제를 키우는 것은 기업이며 정부는 기업이 자유롭게 활동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국 정부가 ‘취재지원시스템 선진화 방안’이라고 강변하는 ‘취재 통제’ 시도에 대해서는 “말도 안 된다(ridiculous)”고 비판했다.

나이스빗 교수는 KMA(한국능률협회) 경영자교육위원회가 30일 국내 기업 최고경영자(CEO)를 대상으로 주최하는 특별 조찬세미나 강연을 위해 28일 방한했다.

―미래 성장동력을 둘러싼 한국 기업들의 고민이 깊다. 미래를 이끌어갈 ‘메가 트렌드’는 무엇인가.

“유감이지만 한국 정부는 ‘생명공학기술(BT)’을 미래 성장동력으로 선언했다가 (사실상) 흐지부지됐다. BT야말로 21세기를 선도할 가장 중요한 과학이다. BT는 인류의 종(種)의 진화와 직접적인 연관이 있는 과학이다. 싱가포르는 BT 관련 과학자를 영입하기 위해 인센티브 프로그램을 도입하고 있다.

그렇다고 5년 안에 뭔가 해야 한다고 다급해할 필요는 없다. BT는 앞으로 100년 동안 과학계와 경제를 지배할 가장 큰 트렌드이기 때문에 시간적인 여유가 있다. 과학자 영입이나 기술 도입 등 아웃소싱도 좋지만 국내 BT산업과 과학자를 육성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

다음으로 중요한 건 나노기술(NT)이나 정보기술(IT)인데, 한국은 IT 응용기술에서 세계 선두를 달리고 있다. 따라서 이제는 BT를 주목해야 한다.

물론 전반적인 혁신도 필요하다. 예를 들어 항공기는 나온 지 100년이 넘었지만 아직까지 혁신해야 할 부분이 남아 있다. 다른 분야도 마찬가지다.”

―기업이나 국가경제 경쟁력의 핵심은 무엇인가.

“인재(talent)다. 세계는 인재를 통해 경쟁하고 있다. 경제정책 1순위가 교육이 되어야 하는 이유다(그는 이 부분에 밑줄을 그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교육의 목적은 ‘학습하는 방법을 배우는 것’이다. 한국이나 일본에서처럼 획일적이고 평준화된 교육으로는 창의적이고 뛰어난 인재가 나올 수 없다.”

―한국의 현 정부는 유럽식 사회복지 모델을 추구했다는 지적을 받는다. 연말 대통령선거가 다가오는데….

“(웃으며) 노 대통령은 이제 끝인가(President Roh is no more)? 유럽은 자기 무덤을 파고 있다. (노 대통령이) 자기 무덤을 파는 유럽을 왜 따라가는지 이해할 수 없다. 유럽식 사회 모델은 유지할 수 없는 모델이다. 유럽은 전체가 연대해서 확실히 망하는 길, ‘MAD(Mutually Assured Decline)’ 모델로 가고 있다.

한국이 성공하려면 경제개혁과 개방이 차기 대통령후보 공약 중 상위에 올라가야 한다. 현 정부에서 금융시장 규제 완화 등이 추진됐지만 수위가 너무 낮았다. 좀 더 과감해야 한다.

또 한 가지 중요한 것은 경제를 키우는 것은 정부가 아니라 기업이라는 점이다. 정부는 기업이 클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줘야 하는데 현 정부는 기업가 정신이나 기업 활동, 경제활동의 동력이 성장할 수 없게 뚜껑을 닫아 버렸다(put a lid on). 정부가 경제를 개발할 수는 없다. 정부는 기업이 자유롭게 활동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는 자양분이 돼야 한다.”

MAD(Mutually Assured Destruction)는 원래 1960년대 미국과 옛 소련의 ‘핵 억지 전략’으로 서로의 핵이 무서워 공격하지 못하는 상황을 의미하지만, 이날 나이스빗은 유럽식 사회 모델을 비판하기 위해 이 용어를 차용했다.

―한국 경제가 쫓아오는 중국과 달아나는 일본 사이에 낀 샌드위치 신세라는 지적이 있다.

“샌드위치는 없다. 모든 세계가 서로 연계돼 있어 누가 어디에 끼어 있는 상태는 아닐 것이다. 중국은 한국이 아니라 전 세계를 상대로 도전장을 내밀고 있다. 한국은 중국의 절친한 친구가 되어야 한다. 양국 기업 간 조인트 벤처 등 기회와 가능성이 크다.

다만 한국이 세계경제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려면 혁신적이고 창의적이어야 한다. 삼성이 제조업 분야에서는 세계 최고 회사이지만 자체 기술은 많지 않다. 이 점이 한국의 고민을 나타내는 ‘메타포(metaphor·은유)’일 수 있다.”

―10월에 남북 정상회담이 예정돼 있다.

“나는 오스트리아 빈에 살고 있다. 무척 멀리서 볼 수밖에 없지만 느낌을 얘기하겠다. (개성공단 기사가 실려 있는 영자지를 펼쳐 보이며) 개성공단은 성과가 없을 것이다. 이런 얘기는 오래 전부터 있었다. 1991년 서울을 방문했을 때 남북 탁구 단일팀이 결성됐다. 남북 통합이 시작되는 상징적인 사건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로부터 16년이 흘렀다. 북한이 지금 하고 있는 많은 것은 제스처에 불과하다. 장차 남북한이 통합된다 하더라도 시간이 오래 걸릴 것이라고 본다.”

―미래를 예측할 때 가장 중요한 실마리를 신문에서 찾는다고 말해 왔다. 신문의 미래를 어떻게 보나.

“신문이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매체다. 신문을 블로그 같은 아마추어 매체로 대체할 수는 없다. 내 책에서 앞으로 시각적인 세상이 온다고 했지만 ‘신문이냐, 디지털이냐’를 놓고 양자택일하는 게 아니다. 물론 디지털을 더 많이 보고 신문은 덜 보게 되는 상황이 도래할 수 있지만, 그렇기 때문에 신문의 역할이 더 중요해진다는 패러독스(paradox·역설)가 있다. 세상이 복잡해질수록 신문이야말로 더 중요한 정보의 원천이다.”

―그러나 한국 정부는 이른바 취재지원 선진화라는 이름 아래 기자들의 공무원 접촉을 사실상 막고 대변인을 통해서만 만나라고 하는데, 미국 등 해외에서도 그런가.

“결코 그렇지 않다(of course not, absolutely not). 러시아에서라면 혹시 몰라도, 말도 안 된다. 그런 조치를 취하는 정부라면 국민이 모든 것을 알려는 것을 두려워하는 것이다. 두려움 때문에 취해지는 조치다. 정보를 알려면 모든 것을 제대로 아는 것이 중요하고, 이를 위해서는 신문이 반드시 필요하다.”

나이스빗 교수는 정부의 취재통제안에 대해 “막아 내야 한다(It should be stopped. of course, of course)”고 여러 차례 반복해서 말했다.

배극인 기자 bae2150@donga.com

김유영 기자 abc@donga.com

▼‘메가트렌드’로 미래 족집게 예측

오늘 국내 기업 CEO들 대상 특강

9일 오전 10시, 서울 강남구 삼성동 그랜드인터컨티넨탈호텔 인터뷰룸에 들어서는 존 나이스빗 교수의 손엔 두툼한 신문 뭉치가 들려 있었다.

“신문 기사를 분석해 미래를 예측한다”는 그는 인터뷰 도중 국내 영자지(英字紙)에 실린 북한 개성공단 기사를 인용하며 남북관계 전망을 내놓기도 했다. 또 “확정된 대통령 후보가 아직 한 명밖에 없지 않느냐”고 할 정도로 한국 소식에 정통했다.

그의 한국 사랑은 유별나다. 1967년 첫 방한 이후 거의 매년 한국을 찾았고, 도리스 씨와 2000년 결혼한 뒤 부부가 함께 한국을 방문한 것도 이번이 7번째다. 각종 강연에서는 자주 한국의 성공 사례를 소개한다.

나이스빗 교수는 1982년 ‘메가트렌드(Megatrends·사진)’라는 책을 통해 정보사회, 인간 위주의 첨단기술, 글로벌 경제 등 미래 사회의 모습을 정확하게 예측해 세계적인 미래학자로 부상했다. 이 책은 106주 연속 뉴욕타임스 선정 베스트셀러에 올랐고 세계적으로 900만 부 이상 팔렸다.

미국 존 F 케네디 정부에서 교육부 차관보, 린든 존슨 정부에서 대통령 특별 고문을 지냈고 IBM과 코닥 등 기업에서 40년간 임원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현재 중국 난징(南京)대 교수, 세계미래회의 이사이며 세계 주요 기업에 미래 경영 전략을 조언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