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한국인 피랍자들의 석방 조건으로 아프가니스탄 탈레반 무장세력의 한국군 연내 철수 요구를 수용함에 따라 국방부는 다음 달부터 구체적인 철군 절차에 착수해 당초 계획대로 올해 말까지 병력과 장비 철수를 끝낼 방침이다.
김장수 국방부 장관은 29일 국회 국방위원회에 출석해 “아프간에 주둔 중인 동의·다산부대는 올해 말까지 임무를 수행하고 정상적으로 철수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에 따라 군 당국은 다음 달 초 아프간 현지 동맹국들에 철수 계획을 통보하고 한국군 병력과 장비의 안전한 이동을 위한 협조 절차를 밟을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아프간의 바그람 공군기지에는 의료지원 임무를 맡은 동의부대 장병 60여 명과 재건복구사업을 지원하는 다산부대 장병 150여 명 등 한국군 210여 명이 주둔하고 있다.
군 관계자는 “동의·다산부대가 사용하고 있는 차량과 의료장비 등은 11월부터 철수작업에 들어갈 예정이며 병력 철수는 12월 중순까지 마칠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부가 피랍자의 석방 협상 과정에서 연내 철군을 전제로 한국군의 철수 시기를 가급적 앞당기겠다는 의사를 전달했을 것이라는 관측도 있다.
한국인 피랍자들이 풀려난 뒤에도 한국군이 아프간에서 수개월 동안 주둔하는 상황을 탈레반 측이 용인했을 가능성이 낮고, 또 다른 피랍 사태를 막기 위해 정부가 동의·다산부대의 조기 철수를 검토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조기 철군 시기는 파병 장병들의 임무주기(6개월)가 끝나는 10월이 유력하게 점쳐지고 있다. 하지만 조기 철군을 하면 무장 납치세력에 굴복했다는 비난 여론이 쏟아질 것으로 예상돼 정부가 쉽사리 결정을 내리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
한편 이번 사태를 계기로 평화재건사업을 위해 이라크 아르빌에 파병된 자이툰부대의 철수 계획도 한층 탄력을 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국방부는 지난해 말 국회로부터 자이툰부대의 파병 연장 동의를 받으면서 올해 6월까지 부대의 임무종결계획서를 국회에 제출하기로 했다가 현지 사정을 들어 계획서 제출 시기를 이달 말로 연기한 상태다.
군 당국은 경제적 측면과 한미동맹 등 국익을 고려해 주둔 규모를 줄이더라도 파병 연장을 통한 자이툰부대의 장기 주둔을 기대하지만 이번 사태 이후 일부 정치권과 시민사회단체에서 철군 여론이 고조되자 난감해 하는 분위기다. 현재 아르빌에 주둔 중인 자이툰부대 장병은 1200여 명이다.
군 소식통은 “자이툰부대의 파병 연장은 사실상 물 건너간 게 아니냐는 관측과 함께 향후 한국군의 해외 파병에도 적지 않은 부작용이 초래될 것이라는 우려가 많다”고 말했다.
윤상호 기자 ysh1005@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