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가니스탄 피랍 한국인 석방을 위한 한국 정부와 탈레반의 직접 협상 결과 인질 19명 전원이 풀려나게 됐다. 이번 사태의 직간접 당사자였던 한국 정부와 탈레반, 아프간 정부, 미국은 각각 무엇을 얻고, 무엇을 잃었을까.
▽한국, 딜레마 속 현실적 선택=정부는 아프간 주둔 한국군의 연내 철수와 선교·구호 요원 철수를 조건으로 전원 석방 약속을 받아냈다. 탈레반이 당초 요구한 동료 죄수 석방은 한국 정부의 권한 밖이라는 사실을 설득해냈다.
혹시 있을지 모를 이면 합의를 감안하지 않는다면 협상 성적이 그리 나쁘지는 않다. 한국군의 철수와 선교·구호 요원 철수는 이미 예정돼 있거나 이행된 사항이다.
그러나 ‘테러범과의 협상 불가’라는 국제적 원칙을 포기한 데 따른 부담은 고스란히 떠안게 됐다. 정부는 협상 초기 “납치범과 교섭한 전례가 없다”며 직접 협상에 부정적이었으나 배형규 목사와 심성민 씨가 희생되자 원칙을 버리고 유연한 태도로 선회했다.
납치가 일어난 지역의 정부를 제쳐둔 채 납치범과 직접 협상을 벌인 것은 세계적으로도 유례가 없는 일이다. 미국 유에스에이투데이는 “앞으로 여러 나라가 무장세력에 항복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지적했고, 독일 슈피겔은 “납치를 부추길 수 있다”고 비판했다.
하지만 인질 협상 전문가인 이종화 경찰대 교수는 “테러범과 협상은 안 하더라도 대화는 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생명을 살리는 일이다”고 말했다.
▽탈레반, 요구조건 포기하고도 성과=탈레반도 얻은 것은 많지 않아 보인다. 피랍 사태 내내 주장해 온 ‘인질과 탈레반 죄수 맞교환’이라는 카드도 막판에 포기했다.
그러나 두바이 소재 걸프연구센터의 무스타파 알라니 소장은 “한국 정부와 아프간 내 탈레반 점령 지역에서 직접 협상을 했다는 것 자체가 탈레반에는 큰 성과”라고 평가했다. ‘테러집단’이 당당한 협상 파트너로 인정받게 됐다는 것이다.
탈레반은 2001년 몰락 이후 지금도 아프간 정부군 및 다국적군과 교전을 벌이고 있다. 정권 탈환이 목표인 그들로서는 아프간에서 민심을 얻고 대외적으로 정당성을 확보하는 것은 중요한 문제이다.
하지만 이슬람권에서 금기시하는 여성 납치와 인질 살해는 탈레반의 이미지에도 결코 좋을 리 없다. 탈레반이 피랍 사태를 더 끌고 가기 어려웠던 것도 이슬람 사회까지 한목소리로 인질 억류를 규탄하는 국제사회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아프간 정부, 원칙은 고수했지만=탈레반의 위상이 높아진 만큼 아프간 정부는 손해를 본 셈이 된다. 이번 사태가 아프간에서 발생했음에도 한국 정부와 탈레반의 협상으로 마무리되자 “아프간 정부가 사태 해결에 기여하지 못했다”는 비판론이 내부에서 나왔다.
아프간 일간지 위사지는 “아프간 정부는 수도 카불에서 120km밖에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일어난 일도 해결하지 못했다. 아프간 정부는 주권국임을 강조했지만 이번 사태는 한국 외교관과 탈레반 부족원로가 해결했다. 부끄러워해야 할 일이다”고 지적했다.
그나마 테러범과의 협상 불가라는 원칙을 고수한 점은 아프간 정부의 성과라고 볼 수 있다.
하미드 카르자이 아프간 대통령은 올 3월 이탈리아 기자를 풀어 주는 조건으로 탈레반 죄수 5명을 석방해 국제사회의 거센 비난을 받은 바 있다. 그러나 이번 사태 초기부터 아프간 정부는 “테러범과의 협상은 테러산업을 조장한다”며 강경한 태도를 보였다.
▽미국, 원칙 고수하며 외곽 지원=한국 내에서 ‘미국 책임론’이라는 다소 감정적인 문제 제기까지 대두되는 상황에서도 미국은 ‘테러범과 협상 불가’라는 원칙을 고수하는 성과를 거두었다.
미국 행정부는 아프간 정부가 탈레반 죄수를 석방해도 눈감아 달라는 한국 국회 대표단의 요청도 거부했다.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6일 카르자이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서도 ‘테러집단에 보상은 없다’는 원칙을 재확인했다.
그러나 탈레반 죄수 석방에 결정적 영향력을 가진 미국의 이런 강경한 태도가 탈레반 측에 다른 명분과 실리를 찾도록 유도한 측면도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와 함께 군사 작전 가능성을 언급하며 탈레반을 압박하는 등 외곽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피랍 사태 발생 후 아프간 주둔 미군은 대탈레반 군사 활동을 강화했다. 28일 인질 석방 합의가 이뤄질 때도 미군과 다국적군은 탈레반과 치열한 교전을 벌였다.
이진영 기자 ecolee@donga.com
이정은 기자 light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