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건넬 기회 제공? 책임 피하기?
검찰은 노무현 대통령의 ‘386’ 측근 중 한 명인 정윤재(43) 전 대통령의전비서관에 대한 수사는 필요하지 않다고 밝혔다. 하지만 정 전 비서관의 행적을 보면 수상한 정황이 적지 않다.
또 정 전 비서관이 현 정권 들어 2년 가까이 국무총리 민정2비서관으로 비리 공무원 감찰 업무를 했다는 점에서 세무조사를 받고 있던 건설업자와 세무조사를 지휘하는 부산국세청장을 소개하고 뇌물이 오고간 자리에 동석한 것은 대단히 부적절한 처신이란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 수상한 정황들
정 전 비서관은 식사 자리가 끝나기 10여 분 전 먼저 자리를 떴다. 정 전 비서관은 “휴대전화가 계속 울려서…”라고 했다. 하지만 자연스럽게 뇌물이 오고갈 기회를 제공하고 자신의 책임을 피하려는 의도가 있지 않았느냐는 의문이 남는다.
한 특별수사통 검사는 “정상곤 전 부산국세청장과 건설업체 사장 김모 씨를 소개해 준 정 전 비서관이 서로 잘 모르는 두 사람을 남겨 두고 자리를 뜬 것은 석연치 않다”며 “왜 하필 자리가 끝나기 불과 10여 분 전인지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문제의 식사 자리 주선 여부에 대한 검찰과 정 전 비서관의 말이 180도 다른 점도 주목된다. 김광준 부산지검 특수부장은 “‘정윤재 만남 주선 의혹’이란 신문 제목에서 ‘의혹’을 가리면 된다”며 정 전 비서관이 문제의 자리를 주선했음을 분명히 했다.
그러나 정 전 비서관은 “정 전 청장과 김 씨를 소개해 줬지만 자리를 주선하지는 않았다”고 했다.
법조계에서는 정 전 비서관이 뇌물 공여 및 수수의 정황을 전혀 알지 못했다는 점을 부각시키기 위한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정 전 비서관이 세금 탈루 문제로 부산국세청의 조사를 받던 김 씨와 정 전 청장을 소개해 준 만큼 자리를 주선했다면 뇌물이 오고갈 수 있다는 정황을 미리 알았거나 짐작할 수 있다는 추론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정 전 비서관이 자리를 주선했다면 ‘뇌물 공여의 방조죄’가 성립된다. 뇌물 공여의 방조란 돈이 오고 갈 수 있다는 정황만 알았더라도 성립이 가능하다. 한 중견 검사는 “검찰은 정 전 비서관을 소환해 조사해야 한다. 그것도 ‘참고인’이 아닌 ‘피내사자’ 신분으로”라고 지적했다.
○ 정윤재의 부적절한 처신
정 전 비서관은 28일 오전 본보의 단독 보도 후 연락을 끊었다. 그러다 이날 오후 6시경부터 언론에 연락해 적극 해명했다. 법적 문제나 추가 의혹이 제기되는 것을 차단하기 위해 법조계나 청와대에 ‘조언’을 구했을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정 전 비서관은 해명 과정에서도 부적절한 발언을 했다. ‘문제의 자리에 동석한 게 적절했다고 보느냐’고 묻자 그는 “당시 ‘민간인’ 신분이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부주의했던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2006년 8월 9일 대통령의전비서관에 내정됐고, 같은 달 27일부터 공식 업무를 시작했다. 문제의 자리는 공식 업무를 시작하기 하루 전인 8월 26일 이뤄졌기 때문에 ‘민간인’이었다는 논리다.
정 전 비서관은 27일 밤 본보와의 3차례 통화에서 문제의 자리에 동석한 사실을 묻자 “기억이 없다”고 한 바 있다.
하지만 28일에는 “10일 정 전 청장 구속 소식을 접하고 제가 두 사람을 소개해 줬다는 점 때문에 깜짝 놀랐다”고 말했다. ‘2006년 8월 26일 서울 종로구 통의동 한정식집 앞에서 1억 원 수수’란 자세한 보도가 있었기 때문에 문제의 자리를 기억하지 못했다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
조수진 기자 jin0619@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