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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俗이 聖을 걱정합니다”

입력 | 2007-08-30 03:03:00

최근 우리 사회에서는 종교가 사회의 빛이 되지 못하고 오히려 갈등의 근원이 되고 있다는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종교의 사회적 역할에 대해 종교계가 각성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동아일보 자료 사진


아프가니스탄 피랍 사건, 신정아 씨 학력 위조 사건, 주지 교체 문제로 신도들 간에 물리적 충돌까지 빚었던 제주 관음사와 조계종 총무원 호법부가 횡령 혐의로 압수수색까지 나선 백담사 사태 등. 요즘 한국 사회 뉴스의 중심에 있는 이 사건들의 공통점은 종교와 관련이 있다는 점이다.

특히 한국 종교의 양대 축인 개신교와 불교가 그 중심에 있다. 이 때문에 세간에는 “종교가 세상을 걱정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이 종교를 걱정하는 상황”이라는 말까지 나온다. 개신교의 우월주의적 배타적 선교관, 이권과 권력을 둘러싼 불교계의 세력 다툼이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지만 이제 한계상황을 맞고 있다는 지적이 줄을 잇고 있다. 특히 정치 사회적 민주화가 어느 정도 이뤄지면서 그동안 ‘성역’으로 자리 잡았던 종교계의 후진성에 시민사회가 주목하기 시작했다. 각종 인터넷 사이트에는 종교계를 향한 강도 높은 비판이 쇄도하고 있다.

○ 자성과 참회만이 변화의 동력

서울대에서 교양과목으로 종교학개론을 가르치는 종교학과 배철현(45) 교수는 학생들 간에 오가는 토론을 듣다 보면 답답함을 느낀다. 주로 개신교 학생들에게서 나타나는 ‘성경은 일점일획도 틀리지 않는다’ ‘다른 종교는 우상이자 배격의 대상’이라는 근본주의적 신앙관 때문이다. 자신의 신앙에 대한 근본주의 태도는 종교에 관한 합리적 토론이나 대화를 어렵게 한다. 배 교수는 “학생들에게 ‘왜 그렇게 생각하느냐’고 물으면 ‘어렸을 때부터 그렇게 배웠다’고 대답한다”며 “신앙고백과 역사적 사실을 혼동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아프가니스탄 피랍 사건의 근저에는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라”는 신약성서 사도행전의 선교관이 있다. 타 종교를 ‘파괴’나 ‘배격’의 대상으로, 타 종교인을 ‘개종의 대상’으로 보는 선교관은 불가피하게 충돌과 대립을 야기한다. 선교를 신앙의 핵심적 지위에 올려놓다 보니 삶으로서의 신앙, 실천으로서의 신앙은 뒤로 밀릴 수밖에 없다. 믿음은 있으나 실천이 없는 모순과 불일치의 세계관에 빠질 수 있다.

‘서울대 중퇴’ 학력 위조 사실을 고백한 능인선원의 지광 스님은 “나는 출가할 때 모든 것을 다 버렸다”고 말했지만 그는 신도 25만 명의 전국 최대 규모 사찰 능인선원의 원장이다.

지난달 일본 도쿄에서 열린 이어령 박사의 세례식에서 성가를 부른 사람이 허위 학력 기재의 당사자인 윤석화 씨이고, 선교행사장에서 노래와 춤을 선보인 사람 중에는 역시 학력 위조로 물의를 빚은 주영훈 씨도 있었다. 최수종 씨는 독실한 개신교 신자이고 오미희 씨는 기독교방송에서 ‘행복한 동행’이라는 프로그램을 진행 중이다.

충간문화연구소 장석만(52) 소장은 “일신우일신(日新又日新)하면서 하나님과 대면해 자신을 돌이켜보고 깨달음으로 자신을 비워 내는 작업을 해야 하는데 무조건 믿음만을 절대시하는 측면이 있다”며 “믿음과 실천이 조화되고 견제를 이뤄야 함에도 한쪽 기능만이 비대해졌다”고 지적했다.

○ 투명한 민주주의적 운영을

신정아 씨의 학력 위조 사실 폭로는 동국대 전현직 이사진 간의 권력투쟁에서 비롯됐다. 동국대의 여당인 영배 이사장과 영담 스님, 이들에 의해 이사직에서 쫓겨난 장윤 스님 간의 대립은 고소 고발전을 거쳐 급기야 불교계 전체로 옮아 붙었다. 문제는 이 사건으로 불교계가 홍역을 치르고 있음에도 싸우는 사람만 있을 뿐 이를 견제할 수 있는 어떤 세력도 없다는 것이다.

특히 불교계에서 말하는 ‘1000만 신도’는 입이 없다. 그저 바라만 보고 있는 셈이다. 참여불교재가연대의 박광서(58) 공동대표는 “사회는 빠르게 변하고 있는데 불교계는 정치역학, 관행, 승습 등으로 인해 자체적으로 변화하지 못하고 사회 변화에 계속 뒤처지고 있다”며 “우리 사회의 핵심적 가치인 민주주의와 투명성, 평등의 문제가 불교계에 뿌리내려야 하며, 이를 위해 국민과 전 사회적 관심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최근 종교법인법제정추진시민연대가 발족돼 종교 단체의 투명성을 담보하기 위한 사회적 운동에 나선 것도 주목받고 있다. 종교인과 법인에 대한 과세, 재정 투명성 확보 등의 법제화에 종교계가 긴장하고 있다.

불교계뿐만 아니라 개신교 가톨릭 등 주요 종교에서도 성직자들의 전횡적인 교회 운영과 재정 비리, 여성에 대한 차별 등이 문제점으로 지적돼 왔다. 특히 성직자들을 견제할 수 있는 평신도들의 세력화는 한국 종교의 미래를 위해 매우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종교계를 둘러싼 잇단 사건들을 접하면서 우리 사회의 ‘반종교적 인식’도 급속도로 확산되고 있음이 확인됐다. 각종 인터넷 사이트에는 특정 종교에 대한 비판을 넘어 증오심에 가까운 적대감이 노골적으로 표출되고 있다.

한국 교회의 영적인 각성과 회개를 외쳐 온 사랑의 교회 옥한흠(69) 원로목사는 “개신교가 욕을 먹는 것이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뭐라 변명을 하기 힘들다. 그분들의 말 중 옳은 것도 있지만 균형을 잃은 얘기도 있다”며 “이런 모든 비판을 겸허하게 수용하고 기독교를 적대시하는 사람들까지 넓은 품으로 포용해 그들의 오해가 풀어지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윤영찬 기자 yyc11@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