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가 석유에 이어 곡물 수출 분야에서도 '자원민족주의' 바람을 일으키고 있다.
러시아 일간지 네자비시마야가제타는 지난주 국제 밀 가격이 최고를 기록했는데도 러시아 최대 밀 생산지인 로스토프, 스타브로폴, 크라스노다르 지역의 밀 수출업체들이 수출 물량을 억제하고 있다고 전했다.
세르게이 샤호베츠 러시아 곡물연합회 부회장은 "농민들도 높은 수출세와 수출 제한 조치를 우려해 수출용 밀 저장고를 열지 않고 있다"고 전했다. 러시아 정부는 식량 안보 차원에서 최근 수출되는 밀에 원가의 30~40%에 달하는 관세를 물리고 있다.
러시아 내부의 밀 가격도 국제가 수준으로 오르고 빵 값도 작년의 두 배 이상으로 치솟았지만 정부는 방치하고 있다.
러시아 식량 전문가들은 이 같은 조치가 극히 이례적이라고 말했다. 러시아 정부는 1962년 6월 시베리아 중부 노보체르카스크 지역에서 식량 폭동이 일어난 뒤 곡물 시장에 수시로 개입해 왔다. 지난해까지는 빵과 소금 등에 가격 상한제를 두고 시장 물량을 정부가 직접 조절했다.
이 때문에 러시아의 최근 이례적인 곡물가 방치 배경에 '곡물 민족주의'가 숨어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석유 민족주의'를 대외적으로 합리화하기 위해 국내 유가를 내리지 않는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것.
농산물 가격 분석가인 이고리 파벤스키 씨는 "국제 밀 시장에 러시아 산(産) 밀이 나오지 않으면 세계적으로 밀 부족 사태에 따른 엄청난 가격 폭등이 예상된다"고 분석했다.
러시아는 미국 우크라이나 캐나다와 함께 4대 밀 수출 국가로 꼽힌다. 미국 정부는 지난주 '내년 5월경 세계 밀 저장량이 사상 최저에 이를 것'으로 예측했다. 전문가들은 국제 밀 시장 가격은 미국과 러시아 두 나라의 수출 물량 조절에 달려 있다고 분석했다.
이 같은 러시아의 곡물 민족주의 탓에 손해 보는 국가도 늘 전망이다.
러시아 밀을 수입하던 이집트는 밀 가격이 1부셸(약 27㎏)당 7.54달러로 최고치를 경신한 지난주 곡물 민족주의 쓴 맛을 봤다. 러시아가 수출 물량을 줄이자 이집트는 손해를 감수하고 수입선을 미국으로 돌려야 했다. 스파게티의 나라 이탈리아의 밀 수입업자들은 최근 모스크바로 대표단을 보내 러시아 농업부 공무원들을 달래고 있다.
모스크바=정위용특파원 viyonz@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