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의 세계에도 엄격한 위계질서가 있다. 정상에 헌법이 있고 그 밑에 법률, 시행령(대통령령), 시행규칙이 자리하고 있다. 이 외에 행정부 조직을 지휘 감독하기 위한 내부 지침으로 총리 훈령이 있다. 상하 질서에 어긋나는 하위법은 헌법재판소에 의해 위헌결정을 받아 효력을 잃게 된다. 그중에서도 총리 훈령은 대외적 구속력이 없다. 일반 국민의 권리 의무와 관련된 사항은 총리 훈령으로 규정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현 정권은 법 세계의 이런 질서를 공공연히 깨뜨리는 행태를 자행하고 있다. 총리 훈령으로 헌법적 가치인 언론 자유를 갖가지 형태로 통제하려는 시도가 그것이다. 후진국 법학자들도 웃을 일이다. 더욱이 그 선봉에 판사 변호사 경력을 가진 법률가 출신 대통령이 있다는 사실은 기막힌 노릇이다. 그 앞에서 김창호 국정홍보처장이 ‘취재 지원에 관한 기준안’이란 총리 훈령을 주물럭거리며 칼춤을 추고 있는 형국이다. ‘취재 지원’의 탈을 쓴 ‘통제 기준’일 뿐이다.
▷문제의 총리 훈령 제11조 1항은 ‘공무원의 언론 취재 지원은 홍보담당부서와 협의해야 한다’, 2항은 ‘(전략) 사후에 정책홍보부서에 통보한다’고 돼 있다. 이 규정이 지금 언론과 갈등을 빚고 있는 취재 보도 원천봉쇄의 근거로 삼고 있는 독소조항이다. 홍보처는 심지어 각 부처의 기자실 폐쇄(합동 브리핑룸 사용)에 협조하면 마치 언론에 시혜라도 베풀 것처럼 이 조항에 대한 ‘협상안’까지 내놓았다. 언론 자유를 밀고 당기는 협상이라니, 어림도 없는 소리다. 총리 훈령 몇 자의 문제가 아니다.
▷언론 자유는 원래부터 국민의 것이다. 정부가 사탕 주듯 나눠 주는 게 아니다. 이는 ‘기본권 중의 기본권’으로, 자유민주주의를 달성하기 위한 핵심적인 요소다. 미국 수정헌법 제1조가 언론 자유를 ‘불가침(不可侵) 권리’로 못 박은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이런 총리 훈령은 당연히 위헌이다. 내각을 총괄하는 한덕수 국무총리는 자신의 직(職)이 더럽혀지고 있는데도 어디서 뭘 하고 있는가. 언제까지 용비어천가만 부를 셈인가.
육정수 논설위원 sooy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