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을 좋아하시나요? 그렇다면 해외여행을 가본 적은 있나요? 올해 4월부터 6월까지 해외로 여행을 떠난 한국 사람은 310만 명이 넘는다고 합니다. 해외여행이 붐을 일으키고 있는 시대인 만큼 우리도 해외여행을 떠나보기로 하겠습니다.
여행을 떠나는 사람들에게는 각자 나름의 이유가 있습니다. 놀이와 축제를 즐기기 위해, 자기 삶을 되돌아보고 자신을 변화시키기 위해, 혹은 지루한 일상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등의 이유로 여행을 떠납니다.
그 목적이 어떤 것이든 낯선 곳으로의 여행에는 모험이 뒤따릅니다. 더구나 그곳이 해외에다, 열대지방이라면 우리의 여행을 ‘미지의 세계를 향한 탐험’이라 불러도 손색이 없겠군요.
아, 이 여행에는 동반자가 한 명 있습니다. 여행기를 작성해줄 ‘레비’ 아저씨인데요, 레비 아저씨는 타잔처럼 힘세거나 날렵하지도 않고, 해리포터처럼 마법을 쓸 줄도 모릅니다. 게다가, 결정적으로 여행을 싫어하고 탐험도 싫어한다고 합니다.
그건 레비 아저씨가 쓴 ‘슬픈 열대’의 첫 번째 문장만 읽어봐도 잘 알 수 있습니다.
우리 여행에 책은 필요 없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여행을 다니면서도 책을 읽는데, 우리 여행에서 책을 읽을 필요는 전혀 없습니다. 오직 보고 느끼기만 하면 됩니다. 이 여행에는 호텔도 없습니다. 아니, 우리가 생각하는 집은 존재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마른 옥수수잎 더미 위에 누워서 달콤한 풀잎 냄새를 맡으며 아늑하게 지낼 수 있다면 집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을 겁니다. 맛있는 음식도 기대하지 말아야 합니다. 만약 썩은 나무에 생긴 커다란 애벌레를 씹었을 때 배어나오는 즙을 버터나 야자나무 과즙으로 상상할 수 있다면 좋은 음식도 있을지 모릅니다.
잘생긴 남자나 아름다운 여자도 볼 수 없습니다. 몸 전체에 기하학적 문신을 새겨 넣은 원주민 여자에게서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다면, 원주민에게 ‘짐승 같은 놈’이라고 혼나지 않을 것입니다. 그리고 수많은 아름다운 사람을 만날 수 있습니다.
이 여행을 잘하려면 호흡이 쉽지 않을 만큼 더운 공기를 들이마셔야 하고, 모기장을 뚫고 들어오는 커다란 모기를 견뎌야 하고, 모기가 들끓는 곳에서 세수도 해야 하고, 그 물을 다시 식수로 사용할 줄도 알아야 합니다.
혹시 벌써 두려운가요? 만약 가고 싶지 않다면 여행을 포기해도 좋습니다. 평생 시골에서 살아온 할아버지에게 햄버거를 맛있게 먹어야 한다고 강요할 수 없는 것처럼, 개고기 먹기를 싫어하는 프랑스인에게 개고기를 강요할 수 없는 것처럼, 브라질의 열대우림을 여행하는 레비스트로스의 여행에 여러분을 강제로 끌고 갈 수는 없습니다. 언제나 그렇듯이 선택은 여러분의 몫입니다.
다만 ‘슬픔’은 기억해야 합니다. 레비스트로스가 관찰한 열대지방은 끝없는 숲과, 말라리아모기, 찌는 듯한 더위 속에서도 삶의 생기가 넘치는 곳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곳에 ‘슬픈’이라는 수식어를 붙였습니다. 그 슬픔은 비빔밥을 먹지 못하게 될 수도 있다는 슬픔과 비슷합니다. 고추장, 참기름, 콩나물, 산나물, 도라지, 고사리 등 온갖 재료가 뒤섞여서 나오는 그 맛을 느끼지 못하게 될 수도 있다는 걱정이지요.
이 걱정은 서구 문화가 온갖 문화들이 살아 숨쉬는 비빔밥 같았던 지구를 획일화시켰고, 그래서 브라질 원주민들의 문화도 사라질지 모른다는 슬픔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슬픔은 문명화된 우리들 스스로에 대한 감정이기도 합니다. 이 감정은 자연과 더불어 살면서, 대기와 풀과 나무와 조화를 이루었던 우리의 아득한 옛 모습을 원주민에게서 발견하고, 돌아갈 수 없는 그때의 평화를 그리워하는 슬픔입니다.
레비스트로스의 말처럼 ‘세계는 인간 없이 시작되었고 인간 없이 끝날 것’입니다. 차가운 공기와 뜨거운 공기가 있기에 바람이 불고 계절의 변화도 느낄 수 있습니다. 만약 온 세상의 공기가 같은 온도가 되어 바람이 불지 않고 대류도 없어진다면, 그때가 아마 ‘세계의 끝’일 겁니다. 그런데 지금 그 ‘끝’의 공포와 슬픔이 레비스트로스가 느꼈던 것보다 더 강하게 느껴집니다.
이수봉 학림 필로소피 논술전문 강사